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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3 03:22

10년 후의 나에게 낙서장/그냥저냥한낙서2010.09.03 03:22


편지쓰기의 재미를 겨우 알고나자 편지를 쓸만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다. 매일 대면하는 가족에게 쓰자니 낯뜨겁고, 소원하게 지내는 지인에게 쓰자니 딱히 쓸 말이 이어지지 않는다. 어쩌나? 하다가 미래의 나에게 보내기로 한다.


10년 후의 나에게

お元氣ですか? 私は元気です.
오늘은 태풍이 지나갔어. 창문이 덜컹거려 날아가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하다가도 비가 안오니 창문 없음 시원하긴 하겠다 했지. 게다가 오전에 정전이 되서, 데이터 날아가고 PC 한대는 전원이 나간듯 죽어버렸어. 자료들은 무사해야 할텐데.

아... 10살이나 많은 너에게 반말하는건 용서해라. 왠지 존댓말 하면 니가 쑥스러워 할까봐 배려하는 거야. 불만이 있어도 넌 내게 답장을 못하니 답답하겠구나. 그래도 편지 받는 즐거움으로 답답한 마음은 상쇄될꺼라 맘대로 생각해버렸어.

요즘 일은 잘 되어가고 있어? 니가 하려고 하던 일 말이야. 벌써 포기한 것은 아니겠지? '벌써'라는 표현이 거슬리다면 '아직'으로 바꿀게. 정말로 잘 되어가고 있었음 해. 아니더라도 내 원망을 하고 있지는 않겠지 설마. ㅎㅎ

오늘 10년후의 나에게 라는 제목으로 6년전에 도착한 편지를 읽었어. 6년전에도 읽었고 그후에도 여러번 읽었지만 뭐 그닥 새로운 감흥이 없다가 오늘 읽어보니 왠걸 새로운 거야. 편지를 보낸 녀석이 기특하기도 대견하기도 한데, 읽는 내가 좀 부끄럽기도 하더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편지 보낸 녀석보다 나은 구석이 없는 것 같아서 말이야. 너도 그럼 정말 안된다. 부탁이야.

그 녀석은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6가지 범주로 해석된다는 다소 도발적인 테제를 갖고 있더라고. 나로서는 이율배반적으로 느껴지기는 하지만 '판도라의 상자' 부분에 무르팍을 팍 치게 되었어. 까뒤집기 전에 알고 있는 세상의 평온함과 까보고 난뒤의 불편함. 어짜피 세상의 꺼풀들을 다 벗겨낼 수 없는 현존재가 접하는 세상의 한계에 니힐리즘에 빠져버렸다 여겼던 녀석에 대한 내 오해가 녀석의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내 모습이란 걸 발견하고는 조금 부끄러워져버렸어.
 
어찌된건지 그 녀석은 미래에 대한 현실적 고민이 없었어. 참 낙천적인 건지, 세상을 모르는 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자신감 과잉상태였던 건지 여튼 그런 녀석이 원망스럽기 보다는 부럽기도 하네. 현학적 허세들이 좀 거슬리긴 하지만 새삼스러운건 책을 참 많이 읽기는 했구나 하는 점이야. 고리끼의 '어머니'와 펄벅의 '어머니'를 읽었던 때인가 본데 솔직히 난 내용이 기억이 안나고, 하루끼와 류의 소설에 심취했나본데 지금의 나는 고전을 더 좋아하니 발전인지 퇴행인지 몰라도 어쨌건 변화는 변화인거겠지.
요즘 나는 책을 별로 손에 들게 되지 않게 된 것을 반성하고 억지로라도 좀 읽으려는데, 그 녀석은 생각해보면 책은 참 많이 읽었구나 싶어. 도서관 800번대 책을 다 읽어버리고 싶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그 100의 1만큼이라도 이루었을래나? 전공은 100번대인 녀석이 ㅎㅎ. 그래도 기억을 더듬어보면 830번대는 거의 섭렵했던듯 하네 기특하게도.

그럼에도 쓰기보다 읽기를 좋아하는 성격만큼은 바뀌지 않은것 같은 것이, 글쓰기는 전혀 발전된게 없는 것 같아. 뭐 읽은 것도 기억나지 않으니 마찬가지일런지도. 이 편지만 해도 무언가 요즘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서 시작한 건데 과거의 리뷰로만 채워지고 있잖아. 블로깅의 폐해일런가? 무언가 재료를 가지고 요리하기라는 글쓰기의 대의는 달라지지 않았는데 요릿감이 계속 게워낸 것들 뿐이네. 편지쓰기조차 이렇게 불편할 정도로 된 내가 낯설어.

오늘밤엔 또 과거로 회귀하는 여행을 해보고 싶어 집어든 책이 두 권.
둘 다 꽤 오래전에 읽은 책인데 전혀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아서 읽고 자려고. 아마 '읽다 자려고'가 맞는 표현이겠지.

사막... 그리고 지중해에 바친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두 권다 서간문 형태니 읽으면서 공부좀 해보려고. 공부가 된다면 다음 편지는 좀 읽을만 할지도 모르겠다. 기대해도 좋아.
즐거운 하루 되길 바래~

p.s. 그나저나 전우익이란 분은 이름이 참 이율배반적이다.


Posted by 붕대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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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highdeth.tistory.com BlogIcon Highdeth 2010.09.03 18: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군생활에서 편지를 가장 많이 쓴 군바리 기네스북' 감이라 호언장담하고 다니고 있습니다.-_-;; 사실 Etude의 시작도 거슬러 올라가면 그 시절의 편지였던 것 같습니다.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수십통을 보내고, 그보다 보내지 못한 편지가 더 많고, 펜팔도 하고, 이상한 봉투를 보고 호기심에 편지도 써 보고,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에게 편지도 써 보고, 해군분부 법무실장에게도 편지 써보고 - 답장도 받았습니다. 건강한 젊은이라는 전화칭찬도 받고-_-;;; - 100일이 깨질랑 말랑 할 때 즈음 부모님께 메일 편지도 보내드리고.... 장황한 것 이상으로 많은 편지를 썼습니다.

    제가 가장 쓰고 싶었던 편지는 어떤 이에게도 해당되는 편지, 그 속에 내가 단 하나도 없는 편지였습니다. 이게 굉장히 힘든 습작을 요구하는 작업이었던걸로 기억하고 있는데, 지금은 잘 할 수 있을런지-_-;;

    편지는 분명 영혼의 소리라 생각합니다. 그 소리가 10년 후 붕대소녀님께 닿기를 바랍니다.

    • Favicon of http://boongdae.tistory.com BlogIcon 붕대소녀 2010.09.04 01: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편지라는걸 언제 써봤나 가물가물 할 정도인데요. 최근에 편지글을 써보고는 흠... 이거 꽤 재미있는데? 하고 끄적여 봤어요. 그러다보니 영 서투르고 낯선 편지쓰기. 결국 이것저것 뒤적여보게 되고, 그러다보니 서간문들도 찾아보고, 일기장도, 받은 편지들도...

      이메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정취랄까...
      Highdeth님 손글씨에서 풍기는 멋이랄까요.

      그럼에도 '건강한 젊은이'에서 피식 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이상한 젊은이'인데 ㅋㅋ 용서를 (__)

    • Favicon of http://highdeth.tistory.com BlogIcon Highdeth 2010.09.05 01: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오나-_ㅠ, 건강한 빨갱이 정도로 합의를 보고 싶습니다.^^

  2. Favicon of http://organicfarmer.tistory.com BlogIcon 꿈이촌놈 2010.09.06 21: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편지쓰기의 재미를 느꼈는데 보낼 사람이 없다면.. 저에게도 보내주세요.
    받아만 볼께요.. 답장은 기대마시고 ㅎㅎ
    -----------------------------------
    "10년 후의 붕대소녀님에게"
    소녀님 하시려던 일 모두 잘 이루어 성공하신 모습을 보니 기쁘네요. 괴짜가~!

    • Favicon of http://boongdae.tistory.com BlogIcon 붕대소녀 2010.09.07 00: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10년후에 이 리플을 보고 너무 감격할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일단 희망적으로 미래를 봐야죠!!)
      괴짜님 새블로그 오픈하면 달려가서 편지같은 글로 대신할께요. ㅎㅎ

  3. Favicon of http://sgoi.tistory.com BlogIcon parrr 2010.09.09 16: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끔은 의식치않고 보내고 싶을때 그리 멀지않은 나에게도 평범한 글이라도 보내보고 싶습니다.ㅎ

    • Favicon of http://boongdae.tistory.com BlogIcon 붕대소녀 2010.09.10 00: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10년 뒤로 훌쩍 보내는 것의 장점이 있어요. 쓸 때 10년뒤니까 뭐~ 하는 맘이라 조금 부담이 없구요. 타임캡슐에 묻어놓을께 아니니까 그 중간에 '그리 멀지 않은 나'가 자꾸 꺼내보게 되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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