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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7 10:28

고스트라이터 낙서장/좀무거운낙서장2010.09.07 10:28


폴란스키의 영화가 너무 유명해서 이 포스팅 제목이 의도와 다르게 낚는 제목이 될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붕대의 대학동기 SJ의 이야기이다.

SJ는 잘나가는 고스트라이터다. 고스트라이터라는 단어 앞에 '잘나가는'이라는 수식어는 굉장히 서글프다. 자기존재를 부정한 채 잘나간다는 것은 국정원 요원이 아니고서야 쉬이 받아들이기 힘든 문제일 듯 싶다. 적어도 국정원 요원은 양지를 지향하기나 하지. 지들 말로는.

내가 기억하는 SJ의 모습은 손글씨의 달인이며(손글씨가 인쇄된 듯 반듯반듯 하다. 예쁜 글씨는 아닌데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어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20분간 뒤져보다가 포기했다.), 거의 모든 동기생들이 시험 때가 되면 노트를 복사해 달라 부탁하자 자신의 노트를 아예 복사대에 맡겨두는 실천하는 지성(?)의 소유자였다.

만화와 영화와 패션을 좋아하던 SJ는 적당한 키에 깡마른 몸매의 소유자였고 각진 얼굴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 붕대가 보기엔 아무 문제없는 각이었지만 콤플렉스라는게 원래 그런건가 보다. SJ가 대학시절 찍은 단편영화 시나리오를 같이 각색했었고, 그가 좋아했던 이정애님의 '열왕대전기'를 탐독했고, 직접 튜닝해서 입고 다니던 그의 패션이 좋았고, 그의 절친들이 좋았다.

같이 수업을 제끼고 평일 오전에 찾은 멀쩡한 젊은 애들이라곤 우리 밖에 없는 한산한 너구리(?)월드에서 사람들 옆을 지날 때 마다 일본인 관광객인척 '아레와 키츠네까시라 '(저넘 여우 아녀?), '타누끼쟈나이'(너구리겠지) 해가며 민망함을 달래던 기억.

붕대가 속했던 자칭 "ASDS, 후천성 학습의욕 결핍증" (나름 공식명칭 – 촌스럽지만 그 땐 이런게 유행이었다.) 스터디그룹에 초빙강사로 초대했더니 한 아름의 Article을 준비해와 당혹시키고, 한 아름의 주전부리를 가져와 환호시켰던 기억.

운동권은 아니었지만 더 나은 균형 있는 시각을 갖고 있었고, 종교인이었지만 도그마적인 것에 대한 혐오를 공유했었던 SJ. 메이데이 시위 때 였던가, 반바지를 입고 연대 공대 쪽 담장을 넘다 무릎팍이 까지고는 교문쪽으로 향해 쩔뚝거리며 걸어가길래 "어디가?" 했더니 "세브란스 병원." 이라고 당당히 말해 진압대기중인 백골단마저 웃게했던 기억.

졸업 후 꿈꾸던 프랑스 유학길에 올라 만화든 영화든 아니면 패션이든 관련 공부를 계속하리라 생각했었는데, 그는 의외로 번역가가 되어있었다. "재미있어?"라고 내가 묻자. "재미있어."라고 대답했던 SJ. 그런 그가 내 놓은 책은 프랑스 책을 우리말로 번역한 책 두 권이 내가 아는 전부였다. 그리고 얼마 후 그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급한 출장으로 나는 그의 결혼식에 가지 못했다. 그리곤 이후 만나지 못한 채 세월은 흘러가고 한다리 걸쳐 간간히 들려오는 소식이 다인 상태.

최근은 아니고 좀 된 이야기지만 다른 친구와 통화하다 꽤 유명한 책(저자도 꽤 유명하다) 몇 권을 SJ가 썼다고 듣게 되었다. 듣자 마자, "아니 왜?"라고 소리질렀다. "그러게~"라는 대답. 30여명의 동기 중에 나름 글빨을 날리던 몇몇 군상들 중 하나였던 그가 겨우 고스트라이터라니. 내게는 꽤 충격이었다. SJ가 썼다는 증거는 하나도 남지 않은 그의 책을 아직 읽지 못했다. 아마도 앞으로도 읽지 않게 될것 같다.

 

붕대는 어제 짧은 글이지만 고스트라이팅을 했다. 그 글은 편집자에 의해 난도질 되어 나갈 것임에 틀림없지만, 해보니 재미있다. 그런데 직업으론 못할 짓이다. 절대로.

(0910아침 수정추가) 어이없지만... 동명이인으로 판명되었습니다. 동기랑 연락을 안하고 지냈더니 이런 오해가... SJ는 전문번역가로 잘 일하고 있고, 고스트라이터는 제가 모르는 다른 SJ인가 봅니다. 처음에 이 이야기를 전했던 다른 친구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따위 청문회식 대답을 하고 있고. 웃어야 하겠지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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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붕대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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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araria.textcube.com BlogIcon 善水 2010.09.07 18: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의 요점과 상관없는 댓글.....

    영화 고스트라이터는 재밌는지요? 받아놓은지 한참 됐는데 영 손이 가질 않아요....

    아레와 키츠네까시라 타누끼자나이 에서 뿜었습니다 크하하~ㅋㅋㅋ

    후천성 학습의욕 결핍증.. 치유책좀 OTL

    심심한 위로를.. (하는게 맞는지..) 전 해본적이 없어서 어떤 기분일지 잘 모르겠어요. 뭔가 가면을 하나 뒤집어쓰고 광대가 된듯 한판 노는 기분, 그런거랑은 다르겠죠? 죄송;;

    • Favicon of http://boongdae.tistory.com BlogIcon 붕대소녀 2010.09.07 21: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반가운 선수님. 글에서 번뇌의 냄새가 하나도 안나는 걸로 봐서 에너지 집중한 일은 깔끔 마무리 하신듯 보여요. 또 내 맘대로 추측.

      영화는 저도 못봤어요. ㅋ 손이 안가네요. 이상하게도.

      그냥 글쓰기도 저는 늘 가면을 쓰고있는 듯 해서 "뭐 별 다를라구?" 가면을 뒤집어쓰고 광대놀음 한다고 생각하고 해봤는데요. 그냥 글쓰기가 저를 감추는 가면이라면, 고스트라이팅은 애초에 '나'라는 개념이 없는 것이더군요. 또 신경쓰이는 것은 이넘의 '나'를 너무 잘 알고 있는 편집자의 시선이라는...

      하루끼 1Q84에서도 편집자 - 고스트라이터 - 공개된 저자 의 관계가 나왔었는데, 그건 또다른 자아 같기도 해서 별 위화감이 없었는데 간략하게나마 직접 경험해 보니 워~ 익숙해 질까봐 두렵더군요.ㅋ 아 그런데 우울하지는 않았습니다. 어짜피 1회성 이벤트이니까요.

  2. Favicon of http://organicfarmer.tistory.com BlogIcon 꿈이촌놈 2010.09.07 23: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스트라이터 = 대필작가 맞나요? 아닌가요? 저는 그렇게 알고 있어서
    오랜만에 일찍 끝났다 싶은데 아직도 사무실이고 시간은 오후 11:20.
    이젠 뭐 그려러니 하고 사네요..

    [여담]
    저 이벤트 또 당첨되서 모토로라 블루투스 또 받아요.. 약오르지요? ㅎㅎㅎ
    저번에 받은건 혈육에게 강탈 당하고 ㅠㅠ 이번엔 제가 사수해서 써야죠.

    • Favicon of http://boongdae.tistory.com BlogIcon 붕대소녀 2010.09.08 00: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시간관념이 남다른 저는 출근 퇴근 개념이 불명확해서 오히려 편한데요. 늦게 끝나고 아침일찍 출근하라고만 안하면 좋은데, 사람들 신기하지요. 토론을 해보면 그렇게 갈래갈래 찢어지면서 출근시간을 보면 개미같은게.

      고스트라이터 = 대필작가 맞구요.
      이벤트의 제왕 = 괴짜님 맞아요. 흥!
      근데 그 블루투스 경호원 처럼 보이는 뭐 그런거죠? 그걸 어따써? ㅁ ㅔ 렁~ ㅋ

  3. Favicon of http://sgoi.tistory.com BlogIcon parrr 2010.09.09 16: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한번쯤은 주변에서 경험하고 한두명쯤은 주변에 존재했던 정감있던 시절 추억들이 떠올라가는군요. 지금 댓글을 쓰는 와중에도.

    • Favicon of http://boongdae.tistory.com BlogIcon 붕대소녀 2010.09.09 23: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parrr님 생각보다 분명 한두명쯤 늘 주변에 더 있었을 꺼라고 생각되요. 절대 밝혀지지 않은... 근데 글 뿐만이 아니라, 영상쪽도 음악쪽도 있으니... 우리가 사는곳은 은근히 유령들이 많네요. ㄷㄷ

  4. Favicon of http://gosu1218.tistory.com BlogIcon gosu1218 2010.09.09 21: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뭔가 좀 서글프네요...
    글도 이제는 저자의 얼굴이 중요한 시대이니..
    어차피 이리저리 광대놀음 하다가 가는 세상인듯도 하고 ..

    • Favicon of http://boongdae.tistory.com BlogIcon 붕대소녀 2010.09.10 00: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기 책 팔기위해 성형수술을 하건 노이즈마케팅을 하건 나만 안넘어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인데요. 그래도 쓰는 것 만큼은 직접 썼음 좋겠는데, 좀 더 알아봤더니 시장이 생각보다 큰것 같아요.
      광대놀음 ㅋ 전 붕대놀음.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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