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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외교 -  親美가 우선인가, 親中이 우선인가.
친미가 우선이다 VS  친중이 우선이다

부산대학교(토론스타P) - 친미가 우선이다
"미국의 패권과 힘, 다자간의 협상을 잘 활용해야 21세기 동북아의 외교 강자로 우뚝 설 수 있다."

전북대학교(카이케로) - 친중이 우선이다
"대한민국이 외교의 강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국과의 파트너쉽이 필요!"

 



좀 더 과감히 생략과 압축으로 정리할 수도 있었지만, 시간도 많이 지난 만큼 최대한 양측의 주장한 바를 시시콜콜한 것까지 가급적 살려놓았다. 물론 엄청난 축약일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붕대의 프레임으로 바라본 것이고 필요한 경우 첨삭도 가했다. 대략 이런 것일 테지 하고. 실제토론은 편집을 통해 방송되고 방송된 분량은 재편집되어 다시보기에 올랐다. 오해가 생기기 딱 쉽지만 그래도 핵심적 내용이 다치진 않으리라.

이유가 뭐가 되었든 좋다. 이런 열띤 토론을 기다렸다고 공공연히 기대했었다.
내가 꼽은 8강전의 하일라이트. 그만큼 기억에 많이 남는다. 


예상 포인트

우선 외교정책에 있어 친미와 친중은 현안이고, 대학토론배틀에서 현안을 소재로 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완전 묵은지 리뷰를 쓰는 지금 우리 외교부는 집안단속 하느라 어느쪽도 경황이 없으리라 여겨지지만, 예상한 논지전개방향은 이랬다. 

부산대 - 외교정책 변화는 신중히 결정해야 될 문제. 따라서 기존 노선(친미)를 유지하면서 친중을 포섭해야.
전북대 - 시대에 부응하는 외교정책 변화가 필요하다. 다각외교는 역사로 증명된 약소국의 유일한 선택. 

대략 이런식. 아마도 제대로 힘겨루기 할 부분은 상대논리의 약점인 친미기조 유지에서 친중노선 양립가능성 논쟁과 다각외교는 현재 친미정책으로 유지해온 많은 국제적 지위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라는 실리적 차원의 문제제기가 아닐까 쉽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실제 토론은 내 예상과는 많이 달랐고 부분적으로는 전혀 반대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신선했다.


전반전

입론에서는 부산대팀이 공격적이면서도 명료한 주장을 한다. 경제적 득실문제, 신뢰의 문제, 안보문제 3가지로 토론의 쟁점을 가져가자고 주장한다. 반면 전북대팀은 외교노선 다각화라는 대의를 갖고 친중노선이 그 출발점이 될 것이라 주장한다. 보통 이렇게 되면 전북대팀의 공세에 부산대팀이 반박하는 수순이라 생각했는데 또 예상은 빗나갔다.

주도권은 부산대팀이 먼저 가져간다. 전반전에서 시종일관 부산대팀의 공격에 전북대팀은 반박으로 일관한다. 부산대의 공격의 강도에 비해 전북대의 반박이 꽤 타당했다고 보고 중간평가 결과는 박빙이라 생각했는데 전북대팀의 압승이었다. 아마도 우리 경제의 대중무역의존도에 관한 논의, 그리고 외교관계를 애인관계로 볼 것이냐, 친구관계로 볼 것인가에 관한 논의에서 전북대팀의 논지가 지지를 얻은 것이라 본다. 

주목한 부분은 꾸준히 공격한 부산대팀의 논지전개 부분이었다. 부산대팀은 우리 외교방향이 친중적이다. 그런데 국제사회가 바라본 우리외교는 친미다. 라는 주장을 한다. 이런 주장으로 무엇을 얻으려 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국제사회에서 바라볼때 우리가 친중외교를 펼친다면 미국을 소외시킨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으리라 보지만 잘 와닿지 않는다. 무엇보다 현상태가 친중외교라는 주장의 근거가 무역량외에 제시할 것이 없다면 굳이 이끌어 낼 이유가 없었던 이야기라는 뜻이다. 우리 대북교역량 보다 못한 나라들을 공격이라도 할 것 아니라면 말이다.

추측에 불과하지만 부산대팀이 초반부터 공격일변도로 갔던 이유는 그만큼 준비를 많이 해왔고 자신이 있었다는 뜻도 되고, 예상반론에 대한 다른 공격수단도 준비 되어 있었을거라고 본다. 그런데 전북대팀이 예상을 살짝 벗어난 반론을 해서 살짝 말린듯도 하고. 결과적으로 부산대팀의 논지 전개는, 그냥 멍하니 듣기엔, 우리외교가 대체 친중적이라는 건지 친미적이라는 건지 혼란스럽게만 만들었던 듯 싶다. 다시 말해 현재 우리 외교정책에서 친미 포션이 줄어든다고 굳이 주장하거나 적시한 부산대팀의 논지는 전북대팀이 친미정책을 적극적으로 비판하지 않은 까닭에 별로 부각되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후반전

후반전도 부산대팀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소모한 것은 부산대팀에서 발화한 "중국, 믿을 수 있읍니까?" 로 촉발된 신뢰논쟁이었다. 열기는 완전 달아올랐다. 디오니소스적으로. 몇몇 패널과 응원단은 과도하게 흥분도 했지만, 그건 욕하지 말자. 그러지 않고 가만히 냉정을 지키고 있다면 좀 가증스러울 것 같으니까.

외교문제에서 신뢰를 논한다는것은 수사학적 표현에 불과하다. 을사오적이 그땐 일본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라고 주장한다면 뭐라 답해야 할까? 그런의미에서 신뢰보다는 실익을 논하는 것이 옳다라는 내 입장은 분명하다. 하지만 대학생의 입에서 튀어나온 신뢰할 수 있읍니까라는 질문은 - 그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 신선했다.

그렇게 빼든 부산대팀의 히든카드에도 전북대팀은 전쟁상황과 평화유지상황으로 국면을 나누는 것으로 화답하는데, 이 부분에서 부산대팀이 다소 준비가 덜 되었던 듯하다. 공격을 시작하고 기세있게 몰아간 점은 훌륭했지만 말이다. 특히 전북대팀의 한미합동훈련을 예로 든 반론에 '미국을 이용한 대중국 견제'라는 답변은 근거가 강하게 제시될 필요가 있었다고 본다. 시기상으로나 작전내용으로 보나 대북압박의 목적인데 이를 대중압박으로 당연히 연결 짓기엔 무리가 있다. 우리 정부가 중국에게 협력을 요구했을 때, 오히려 한미합동훈련을 빌미로 외교적 공세를 가한쪽은 중국이었다는 점은 부산대팀의 논리와 합치하지만 한미합동훈련에 관한 외교적 마찰에서 우리나라 VS 북한, 미국 VS 중국 이라는 구도가 형성되었고 미국 VS 중국 이라는 트랙에 우리는 소외되었던 것이 사실이니까.

신뢰의 문제를 외교정책의 기준으로 생각하는 아이디어는 참신하긴 하지만, 그 본의에 공감 못할 이유는 또 있다. "적어도 중국보다 미국이 더 믿을 만 하기에..."라는 주장 때문이다. 누가 더 믿을 수 있는가로 외교정책을 결정하자고 신뢰의 문제를 꺼내들었다면 외교의 본질을 망각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신뢰관계를 쌓아가는 것이 외교의 본질 아니던가? 주장대로라면 재중외교관을 철수시켜야 할지도.

게다가 이 주장의 근거는 선제 되었던 한미동맹과 북한과 중국의 군사적 동맹이 될텐데 전쟁을 전제해야만 성립하는 것이고 이것은 앞서 국면을 나누어 해석했던 전북대팀의 반박을 넘어서지 못했다. 중국 신뢰할 수 있는가를 상대 토론자에게 물으며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친중외교의 부당성을 적시하고 친미외교의 타당성을 주장하는데에 더 집중했어야 했다고 본다. 다시 말하지만 신뢰관계라는 것은 쌓아가는 것이고 변화하는 것이기에, 현상만을 문제 삼을 수도 없는 문제일텐데 공격 자체는 통쾌할 지 몰라도 그 질문이 되돌아 올경우의 근거가 부족했기에 의미를 남기지 못했다.


정리하며

새삼스럽지만 토론의 장에서 포지셔닝과 주도권은 중요하다. 핵심은 '중국을 신뢰할 수 있는가?' 밖에 기억나지 않지만 강렬한 한방을 날리고 전체적으로 주도권을 갖고 갔던 부산대팀과 '대미정책의 폐기가 아닌 대중 외교의 시작으로 자주적 외교정책 수립하자'는 다소 교과서적인 결론을 견지하며 차분차분 반박해내던 전북대팀의 대결. 근소한 차이로 승자와 패자가 나뉘게 된 이유일 것이다. 논리의 대결보다 의견의 대립이 강했지만(토픽의 속성탓이라고 본다) 토론의 대의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다른 토론 주제하의 동어반복에 비한다면 시사점도 많았고 팽팽한 긴장감도 있었다는 점에서 양팀 참가자분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립서비스가 아니라 진심이다.)

다만 애초에 승리는 반중국 발언 일변도였던 부산대팀에 가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친미정책의 정당성은 별로 언급되지 않았고 오직 처음부터 부산대팀의 기획은 중국 깎아내리기에 치중했다. "차라리 친인도 정책"이라는 발언이 그 증거다. 외교적 표현이 허울뿐인 수사로 점철된다고 외교정책에 관한 토론이 수사학적으로 이뤄져서는 곤란하다. 거친 단순화가 되겠지만, 부산대팀의 논지를 정리하다보니 남은것은, 별 다른 대안 없으니 원래 하던대로 친미기조를 유지하자. 섣불리 바꾸다간 큰일난다. 정도가 되겠다. 전북대팀의 주장이 참신하거나, 대단한 것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토론의 흐름은 전북대팀 주장의 검증작업이 된 셈이다. 토론의 주도권을 시종일관 잡고 이끌었던 부산대팀에 의해서 말이다.

쓰고나니 일방적으로 부산대팀 이야기 밖에 안했다. 이것 역시 아직도 맴도는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중국, 믿을 수 있습니까?" 탓인 듯 하다. 꽤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승부를 떠나 우리의 경제문제, 안보문제를 외교적 관점에서 풀 때 고려할 사항중 직면한 문제는 대북문제이라는 점인데, 대북문제를 양팀 다 직접대화가 현실적으로 무리라고 보는 점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물론 대중, 대미외교를 통한 우회적 전략이 폐기되어야 할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는 남북합의서도 만들었었고, 정상회담도 가졌고, 지금도 정부, 민간 채널이 존재한다. 천안함 정국과 북한의 권력이동문제로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게 되긴 했지만 말이다. 부산대팀의 한 학생이 남북문제는 직접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크게 공감했는데. 곧바로 노선을 수정하는 것을 보고 느낀 바이다.


군더더기 덧붙임

요즘 유명환장관실각과 외교부특채사건으로 뜬금없이 재조명을 살짝 받고 있는 송민순 현의원 외교부장관 시절 포럼발언을 하나 발견했다. 인용문은 짧긴 하지만 참여정부의 통일정책, 즉 대북정책과 대미정책을 말하는 것이라 여겨지는데, 친미와 친중으로 나뉘어 토론할 때, 이런식의 유연함이 필요하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I have to say that armistice is armistice.  Armistice is the truce, the stopping of the war -- technically we are at war.  So in this matter I have to approach from two track -- one is informality from armistice to a peace regime, from truce to peace regime.  And the other one is in substance.  We have to have a mutual trust and constant building measures in place including the normalized relations between the parties concerned. 

The one is the inter-Korean relations should be deepened.  Presently, the inter-Korean relations are not normal.  We cannot move freely to North and to South.  We cannot allow the free flow of information or goods and services in an inter-Korean track. 

And between -- the United States and North Korea are virtually at war.  And without the normalizing relations between Pyongyang and Washington and between Pyongyang and Seoul we cannot say there is peace.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2007.6  출처 http://www.journalog.net/kingjs1999/12272  


부연하지만 '이런식의 유연함'이란 대미외교에서 우리의 대북정책을 설명하는 방식을 뜻하는 것이고, 미국무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세련된 비판도 깔려있다는 점에서 표현한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외교문제는 정말 어렵다. 그 어렵다는 외무고시를 패스한 똑똑한 사람들이 바보짓 하는 것 보면 알 수 있다. 우리 외교가 근대 세계사에 있어 가장 효과적인 외교정책중 하나로 평가되는 20세기 초중반의 태국이 살아남은 방식에서 한 수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되새김질 하게되며 마친다. 

 

 

Posted by 붕대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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