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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좀 시대착오적인 이야기인지라 머쓱하지만, 인터넷은 자유롭다.

구글의 자유와 네이버의 자유의 정의와 범위를 논하고픈 마음은 없고, 권위나 편견에 비교적 자유로운 익명소통의 장점과 책임 없는 험담과 욕설의 그림자에 대한 논의도 지겹다.

예전 어떤 익명 게시판에서 꽤나 공격적인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공격의 대상은 그 게시판의 글 내용이었고 나는 나름 논리적 분석을 통해 조목조목 따졌다. 대략, 학벌주의를 비판한답시고 허술한 통계적 양상적 접근으로 쓰인 글에 대해, 통계 조사방법론적 비판과 양상논리에서 부정어 사용의 오류를 근거로 썼다. 그간의 논란이 너무나 인신공격적으로 흘러 본질을 흐린다는 생각도 있었고, 또 논쟁을 좋아했던 내 성격 탓에 간만에 등장한 '핫'한 이슈를 그냥 넘기지 못한 것이다.

익명게시판이긴 하지만 오프라인으로 출발한 까페 내에 존재하는 것이었고, 나는 늘 원래 사용하던 닉네임을 그대로 사용했었다. 즉 알만한 사람들은 서로 아는 사이. 술 먹고 쓴 건지 맨 정신에 쓴 건지 기억나지 않지만 뭐 글이 하늘로 날아가지는 않았고, 포인트는 그럭저럭 잡고 있었고, 게다가 비어나 욕설 하나 없는 정당한 비판 글이었다고 자평한다.

애초에 내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글을 쓴 사람은 이미 지쳐 나가 떨어진 건지 침묵했는데 내 글이 본의 아닌 낚시가 되어 꽤나 열띤 댓글 릴레이가 시작되었다. 정작 낚시꾼은 바빠서 한 동안 그 게시글을 다시 보러 오지도 않았었는데, 몇 일 지나고 나서 보니 무려 100개가 넘는 댓글과 엮인글들이 붙어있었다. 멤버수가 두 자리 숫자 모임에서 기이한 현상이었다. 그 중 대부분은 당연히 글에 대한 비판과 비난, 또 다른 이에 의한 반박과 비난 이었는데 뭐 비난에 이미 충분히 익숙해져 있었던 나는 정신적 타격 따위 전혀 입지 않았고, 쓸만하다 싶은 반론은 이미 다른 이에 의해 재반박 되고 있었고, 별로 끼어들고 싶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자연스레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는 즐거움에 빠졌다. 그런데, 이상한 엮인글 하나가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그 엮인글도 이미 댓글이 줄줄이 달리고 있었다.

"이 글은 평소 OO의 다른 글과 비교했을 때, 도저히 같은 사람이 쓴 글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로 시작된 그 글은 그간 내가 그 까페에 썼던 글을 인용해서 조목조목 비교해 놓았다. 그 역시 익명을 사용했지만 아마 오프에서 나를 알 던 사람이었음에 틀림없다. 꽤나 분석적인 글이었으나 역시 반론이 제기되고 논란은 이상하게 번졌다. 그 엮인글의 말미에 붙은 댓글엔 "결국 OO당사자가 해명을 해야 한다."라는 댓글이 달렸고, "익명게시판의 글쓴이가 왜 해명 따위 해야 하나?"는 댓댓글이 바로 따라붙었다.

'일이 커졌구나.' 라고 생각한 나는 쓸데없는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아무 생각 없이, "OO입니다. OO으로 올라온 글은 제가 쓴게 맞습니다." –OO 이라고 남겼다. 그 글에 또 댓글이 달린다. "너 누구니?" – OO

나는 난감해져 해명을 포기했다. 뭐 그 논란은 채 일주일 지나지 않아 시들해졌지만. 

 

때로 그 익명 게시판에 글을 쓰며 닉네임을 유지했던 이유는 어짜피 닉네임 자체에는 어떤 내포도 외연도 없다는 생각에서 였다.(어떤 닉네임은 정말 큰 외연을 지니곤 하지만 내 경우는 의미불명이었다.) 하지만 글쓰기가, 흔적이 쌓이며 내포는 당연히 확장된다는 새삼스런 사실을 깨달았었다. 

어떤 조그마한 까페(콤뮨)에  Philosophy 또는 Philos, Sophia 등등 다소 노골적인 외연을 가진 닉네임을 번갈아가며 쓰시던 분이 있었다. 어려운 말 안쓰면서 어렵게 말하기에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계셨던 그분은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 YK였다. 그분은 평생 교수가 되지 못할 줄 알았더니 벌써 몇 해전 K대 교수가 되셨다. 와~ 하고 봤더니 교수 앞에 멍에처럼 '연구'라고 붙어있다. 역시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들은 교수가 안 된다. 부디 눌러 앉아 교수임용 되시길 바라보지만 뭐 쉽지 않겠지. 어쨌건 그분이 인터넷을 예찬하며 하신 말 중에, "상대가 나를 알고 있는 경우 철학적 대화를 하게되면 보통 너무 조심스러워 지기 일쑤인데, 인터넷에서는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내뱉는다." 라며 무척 즐겁다고 하신 기억이 있다. 분명 그분은 즐거웠으리라. 싸가지 좀 없는 붕대도 그분한텐 감히 개길 생각을 못했으니, 얼마나 무료하셨을까.

종종 내가 속한, 또는 속했던 곳의 게시판에 가보면 여전히 많은 익명의 글들이 보인다. 그곳의 글을 읽다 보면(물론 멤버가 너무 한정되어있어서) 닉네임 따위 안 봐도 누구 글인지 짐작이 된다. 그런데 가끔 장문의 글임에도 누구지? 하는 글도 있다. 완전 궁금해진다. 하지만 물어볼 수는 없다. 물어봐도 해결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글쎄, 그가 누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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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붕대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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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highdeth.tistory.com BlogIcon Highdeth 2010.10.03 23: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교수가 될 것 같진 않습니다.-_-;;;;;;;;

    • Favicon of http://boongdae.tistory.com BlogIcon 붕대소녀 2010.10.04 02: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 되려하지 않으신다는 것 알고 있지만, 되시면 의외로 인기 교수님이 될지도. 저 교수님 짤리기 전에 꼭 들어봐야겠어라는 무모한 폭풍러쉬~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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