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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 "아 대한민국" 1990

1. 수도권 어느시에서 일어난 이야기.

태풍 곤파스가 휘몰아친 몇일전 시에서 세운 현수막 설치대가 그만 넘어졌다.
시에서 세운 수십개의 현수막 설치대중 유일하게 넘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 지역 신문기자가 담당자에게 전화를 한다. "부실공사 아닙니까?"
경쟁 현수막 설치대 제작업체에서 민원을 넣는다. "부실공사 의혹을 밝혀주십시오."

태풍이 관통하고 인근지자체에선 더 큰 피해가 났고 전국적으로 피해가 심각하다는데,
수십개(몇개인줄 모르지만 대략 봐도 20개는 넘고 100개는 안넘을 것이 확실하니깐)중에 하나만 넘어갔다.
그것도 도로쪽으로 넘어간것도 아니고 풀숲쪽으로 비스듬히 꺾여서 부가적 재산피해나 인명피해가 안타깝게도 없었다. 더 안타까운 것은 별다른 눈에 띄는 시의 책임을 물을 만한 피해가 없었다.

태풍이 그들의 기대이하로 좀 약했나보다. 


2. 동아시아 어느나라에서 일어난 이야기.

외교장관의 딸이 외무부 5급공채로 뽑혔다.
딸은 대한민국 최고수준의 여대 정치외교학과 출신의 재원.
다국적 기업에서 일한 경력과 외무부 계약직으로 3년을 일한 경력이 있는 엘리트이다.

1차공고에 응시했지만 불행히도 사소한(?) 외국어 시험성적증명서가 유효기간이 지나간 것이었다. 천우신조인가? 다행히 15명여의 지원자들이 모두 준비서류가 미비했기에 1명만을 뽑는 자리에 적격자가 없어 2차 공고가 떳다. 천만다행으로 2차 서류마감에 딱 맞추어 재응시한 외국어 성적증명서를 제출할 수 있었다. 게다가 냄새를 맡은 지원자들이 다른 살길을 알아보는 바람에 경쟁률도 확 떨어졌다. 고진감래. 비정규직에서 드디어 정규직이 되었다. 청년실업자들의 희망이고 가문의 영광이다. 이제 자서전 초고를 슬슬작성해 나가셔야 할 것 같다만 합격이 취소되었다.

행정소송으로 맞서기를... 



3. 49%의 지분이 곧 팔려나간다는 어느 공항청사에서 일어난 이야기.

축구선수 두명의 입국이 알려지고 기자들은 몰려들었다. 두명의 축구선수는 기자들을 피해 다른 통로로 입국한다.
일부기자들에게는 정중히 소속사를 통해 양해를 구하고. 다른 일부기자들에게는 치사하고 프로답지 못하게 통보를 안했다. 당연히 미리 통보를 받지 못한 기자들은 뒤늦게 허탕을 친 사실을 안다. 발로 뛰는 기자에게 참 힘빠지는 순간이고 화나는 순간이다. 흥분을 북돋아가며 기사를 송고한다. "팬을 무시하는 축구선수!"

아... 공항에 나간 기자들은 팬이었구나.


위의 3가지 거짓말은 오늘 하루 이래저래 맞닥뜨린 크고도 미숙한 거짓말들이다. 오늘은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 지긋지긋한 거짓말. 하지만 붕대도 눈하나 깜짝 안하고 거짓말 잘한다. 거짓말을 하면 안된다고 할 참이 아니다. 거짓말을 좀 잘하라고 격려하는 차원(?)이라는 점 유념해 주시길.
 

의외로 많은 철학자들이 진리를 추구하는데 정신이 팔려 거짓말의 유용성을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했던 것 같다. 칸트까지의 철학에서 거짓말에 의미부여는 역설Paradox의 차원에서 이용된 것 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명한 "모든 크레타섬 사람은 거짓말장이 이다."라는 크레타섬 사람인 에피메니데스의 말 정도일까?

중세철학에서는 대표자인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 공히 거짓말은 선의를 해친다는 점에 공감하고, 아퀴나스의 경우 거짓말의 존재를 염두에 두고 참말의 의의를 설명하지만 거짓말의 존재론적 해명은 하지않고 얼버무린다. 신을 믿는 사람들에겐 불편한 현실이었을테니까.

칸트는 익히 알려진바 대로 그의 삶이나 철학체계 내에서나 무조건 진실만을...The truth, the whole truth, nothing but the truth. 이다. 이런 전통은 칸트를 계승한 독일관념론(피히테)에서도 칸트가 실천이성비판에서 맞딱뜨린 불편한 진실도 진실이라는 대의를 따른다. 겨우 19세기에 이르러서야 거짓말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본격화 되었다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실존주의가 갖는 이기적인 인간관에서 거짓말은 불가피한 선택지의 하나라는 투의 결론을 내렸다면 니체역시 힘(권력)에의 의지에 기반한 도덕관념 속에서 본능으로 환원되는 거짓말은 정죄할 수 없다는 결론이다. 삶에 대한 오류가 삶의 요소라고 주장하는 니체에게 뭐 거짓말 쯤이야. 좋은게 좋은거일 뿐인 공리주의야 말로 작금의 정치권에서 하는 무수한 거짓말들의 철학적 기반이다. 국익을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이래서 붕대가 칸트를 좀 편애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짜피 철학에서 참과 거짓을 따지는 분야는 논리학이다. P⊃Q TFTT 대충 기억 나시는지? 요런 논리학의 참 재미난(?) 진리값 문제는 다음에 논하기로 손가락 걸어 약속하면서 좀 다른 '손가락'이야기로 대략 마무리해야겠다.

다음 인용문은 쉬크한 거짓말의 유쾌한 예.

이윤기 '손가락' 1999년도 제23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265~267p 부분발췌

  

한 교수가 무얼 하는 사람인지 알 리 없는 단골 정육점 주인이 그에게 물었다.
  "대체 뭐 하시는 분이신데 고기를 그렇게 잘 아세요?"
  "저요? 사실은 삼류 호텔 한식부 주방장이랍니다."

  사람 좋은 한 교수가 먹거리에도 정통한 것은 어쩌면 시도 때도 없이 쳐들어오는 악우들 술 치다꺼리를 하느라고 시장을 뻔질나게 드나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정육점 주인은 그가 정말 한식부 주방장인 줄 알고, 한식에 서투른 주부나 새댁의 질문을 받을 때마다 혹 한 교수가 가까이 있으면 한 교수의 자문을 구하고는 했다.
  나는 한 교수가 몇 차례 그 재래 시장에서 하던 현란한 말장난을 잊지 못한다. 어느 날 나와 함께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한 교수에게 정육점 주인이 물었다.
  "주방장님. 이 새댁이 육개장을 끓인다고 하는데요. 육개장을 끓이는 데 숙주 나물을 넣는게 좋은가요. 안 넣는게 좋은가요? 의견이 분분해서요."
  한 교수는, 넣는 게 좋다든지, 넣지 않는 게 좋다고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앞에 서 있는, 새댁처럼 보이는 여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주인이 비만형인가요, 아니면 마른 사람인가요?"
  "마른 편인데요."
  새댁이 대답했다.
  "그러면 숙주 나물은 넣지 마세요."
  한 교수가 명령하듯이 대답했다.
  "아, 그렇구나...... 마른 사람에게는 숙주 나물은 좋지 않은 것이구나."
  정육점 돌아나오면서 내가 물었다.
  "마른 사람에게는 숙주 나물은 좋지 않다...... 무슨 근거가 있는 건가요?"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그냥 한번 해본 무해무득한 소립니다. 그냥 가르쳐 주는 대신, 남편의 체형까지 묻고 나서 가르쳐 주면 맹신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곧이듣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런 세상입니다."
  그가 정육점 주인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은 적도 있다. 그때도 나는 그 곁에서 지갑을 들고 서 있었다.
  "주방장님, 육개장을 끓일 때, 굵은 대파는 삶아서 넣어야 한다는 말도 있고, 그냥 넣어야 제 맛이 난다는 말도 있는데요?"
  그러자 한 교수가 천천히 되물었다.
  "오늘이 며칠이지요?"
  "6월29일 아닌가요?"
  정육점 주인이 되물었다
  한 교수가 천천히 대답했다.
  "하지가 지났군요. 삶아서 넣는 게 좋겠어요."
  그날 나는 한 교수에게, 무슨 근거가 있는 소리예요, 하고 묻지 않았다.


원래 위 인용문은 지월지교에 관한 이야기가 주된다. 손가락드립 관련 포스팅 할 때도 문득 생각 났지만 주제가 너무 확장된다 싶어 넘어갔다가 이번 기회에 인용해본다. 붕대추천 완소단편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꽤나 독설가이신 이윤기선생의 말보다는 문체를 사모하는 붕대의 책장을 둘러보면 이윤기라는 이름이 새겨진 책들이 많다. 너무 많다. 윤기빠인가 보다. (이윤기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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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붕대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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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변명을 좋아하지 않는다. 변명하는 사람도 좋아하지 않는다.
업무에 실수한 직원에게 질책을 할 때, 돌아오는 대답은 주로 이런 식이다.

"기획안 다 됬어?"
"어제 너무 늦게까지 야근을 해서." 

"어제 거래처 전화 돌렸지?"
"인턴한테 챙기라고 했는데..."

질문과 호응하지 않는 답들은 대부분 변명이다. 국어성적이 나빴을리 없는 직원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내가 기대하는 대답은 아마 이런 것인가 보다.

"2시간 정도면 마무리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늦어져 미안합니다." 

나는 어떠냐고?
사과의 달인이다. 사고의 달인이기도 해서 문제다.^^
"미안합니다." 한마디가 왜 이렇게 힘든걸까?
아마도 잘못을 인정하는 것보다 유야무야 시키는 것이 이롭다는 경험에서 비롯한 것일 테다. 

흔히 '좀 배웠다는 사람들' 이라는 표현이 있다. 솔직히 좀 배우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는 세상임에도. 
콕 찝어 좀 배웠다는 사람이라고 지칭하는 경우, 대부분 사회지도층 인사이거나 대중매체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때로 까임의 재료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요런 좀 배웠다는 사람들은 그냥 까이기만 하지 않는다. 되깐다. 방법도 같은 논술학원이라도 다녔는지 비슷하다.

"달을 보라고 했더니 왜 내 손가락만 보나?"

나는 이 달드립이 지겹다. 좋은 말도 하루이틀이지.. 란 의미가 아니라. 너무 자주 잘못 쓰이다 보니, 의미가 변해가는게 아닐까 싶다. 

指月之敎

무진장이 혜능선사께 물었다.

"열반경을 여러 해 공부했으나, 아직 이해를 못하는 곳이 많아 가르침을 주십시오."
"나는 글자를 모릅니다. 그대가 경문을 소리 내어 읽으면 그 속의 진리를 해석할 수 있을런지 모르지요."
"글자도 모르면서 어찌 진리를 안단 말입니까?"
"진리란 문자와 무관한 것!(不立文字) 진리란 마치 하늘의 달과 같고, 문자는 우리들의 손가락과 같은 것이오. 손가락은 달이 있는 곳을 가리킬 수 있어도 손가락이 달이 아니니. 달을 보려고 할 때 반드시 손가락을 통해 바라볼 필요는 없잖소." 


자 이 이야기를 곱씹어보자.

손가락은 열반경이고 달은 깨달음이다. 깨달음을 구하는데 열반경의 이해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선불교의 일화에 이런 비유 말고도 훨씬 엽기적인 이야기들도 부지기수다.
똥막대기에 머리통을 후려맞는 이야기도 나오고 개에게 불성이 있느냐 없느냐 말장난 같은 이야기도 있고, 스스로 팔을 자르는 이야기도 있다. 경전을 찢어발긴 이야기도 있다. 도배지로도 쓰고 화장실에서도 쓴다. 
혜능선사가 열반경을 던져버리지 않은 것은, 무진장스님에게 맞춤형, 요즘 말로 '눈높이 교육'이었다고 해야겠다. 정말 손가락을 쳐다보다간 영영 달을 못보게 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달드립을 칠때는 상대방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자신을 합리화 시키는 도구로 남용 될것이 아니다.




하지만 손가락도 안보고 달을 어찌 볼것인가? 

다른 것은 다 떠나서 만약 무진장이 "열반경을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가르침을 주십시오." 라고 했더라면 혜능선사가 달을 가리키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고사성어를 그 고사에 맞추어 쓰라는 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말이란 것은 화자의 의도를 드러낼 수 있다면 충분하다.  내가 지어낸 말이 아니다. 공자 말씀이다.(오늘 포스팅은 유불 통합?ㅋ) 
달드립을 쓰고 싶다면 혜능선사처럼 처음부터 제대로 된 목적을 갖고 쓰자는 이야기다. 그러니 변명으로 "나는 달을 보라 손가락을 쳐들었는데, 내 손가락만 보니?"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제대로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지 못한 이유를 좀 돌아봤으면 좋겠다. 애초에 손가락이 어느곳도 가리키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던가? 아니면 늘 태양만 가리키다가 간만에 갑자기 달을 가리킨건 아닌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보통사람들은 말하는 사람의 손가락에 익숙 하지 않다. 가능하다면 손가락을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저는 지금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습니다라고 안내해 주어야 한다. 그걸 제대로 했는데도 사람들이 오해한다면 달드립치기전에 좀 기다려보라고 권한다. 보통 사람들이 경전을 오래 공부한 무진장스님 같지는 않겠지만, 그리 무식하지도 않으니까. 

나는 위에 말한대로
"변명을 하기전에 해명부터 해야할 것이고, 필요하다면 사과가 먼저다." 라는 지론을 갖고 있다. 그런데 때로는 이런 내 지론을 사뿐히 즈려밟는 손가락질들이 있다. 아주 산뜻하다.

참고로 아래 소개되는 것들은 좀 철지난 것이다. 여기서 말한 사과가 요 Apple은 아니지만...



스티브 잡스가 "게으른 아도비"라고 플래쉬 자체의 Performance와 모바일 기기와 Compatibility의 문제를 제기했던 것에 대한 반격으로 Adobe가 만든 광고다. 아이폰과 아이패드에서 플래쉬를 지원하지 않는것을 빗대어 제목과는 반대로 Apple을 교묘히 까는 광고다. 



요건 애플의 공식반박은 아니고 어떤(누군지는 모르겠다) 네티즌의 패로디. 플래쉬 에러를 풍자한 것이다.
F5에 자연스레 손이가게 만드는 기발한 착상이다.

여튼, 여기에 무슨 손가락을 보고 아 아도비는 애플을 사랑하는구나... 할 사람은 없다.
(물론 여기서 달은 두 회사의 표준싸움과 시장지배권 싸움이겠지만...)

뭔가를 까거나 되깔때는 요렇게 세련되게 하면 좋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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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붕대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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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organicfarmer.tistory.com BlogIcon 꿈이촌놈 2010.08.20 14: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DJ DOC 형들이 이 사실을 알면... ㅎㅎㅎ

  2. Favicon of http://sgoi.tistory.com BlogIcon parrr 2010.08.20 14: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름 개인적으로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말투 중 하나입니다.

    미안해" 고마워" 알았어" 라는 간단한 말에 담긴 많은 느낌과 영향력을 조금씩 알아가는 중입니다.

    질문과 답이 서로 평행선에서 달리고 있는 것은 저도 상당히 싫어하는 성격이라.ㅎ
    주로 사회생활에서는 상대방이 알면서 그런 답을 낸다는 것을 알 때 더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요. 주로 많이 경험해본 상사들이 말이죠.:

    생각할 것이 많은 부분인 것 같습니다. 모두가~ㅎ

    • Favicon of http://boongdae.tistory.com BlogIcon 붕대소녀 2010.08.20 18: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에그 파르르님 말씀을 잘못 이해했네요. 상사들이 당한다는 말씀인데, 상사들이 이용해 먹는다는 걸로 오해하고 위에 글 달았습니다. 뭐가 그리 급한지 참..ㅋ 여튼 제가 위에 쓴 것은 일부의 이야기지만, 핑계를 대게끔 유도하고는 더 크게 혼내는 사람들도 있더라는 무서운 이야기였습니다. ^^

    • Favicon of http://boongdae.tistory.com BlogIcon 붕대소녀 2010.08.20 18: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함정에 빠뜨리고 나서 구해주려는 사람들이겠지요. 제 주변에도 엄청 많은데, 저는 꽤 싸움잘해서 ㅎㅎ 늘 티격태격 합니다. 그래도 싸우고 나서 곧바로 친하게 지낼 수 있으니, 부모님께 물려받은 천성 하나 만큼은 늘 감사한답니다.^^

    • Favicon of http://sgoi.tistory.com BlogIcon parrr 2010.08.20 18: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위의 댓글도 아래 댓글도 편안히 이해했습니다.

      요즘 여러 부분으로 주제이야기를 하시는 붕대님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많습니다.ㅎ

      건강히, 편안히 휴가 다녀오세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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