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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는 죄인인가?
찬성(죄인이다) VS 반대(죄인이 아니다.)
  
이화여자대학교(오만과 편견) - 찬성
"서민들을 착취해서 얻은 부를 나누지 않는 부자야 말로 죄인-"
      
명지대학교(비주얼) - 반대
"자본주의 시장에서 부는 재원창출에 대한 노력의 댓가"

 

 
16강전을 보고 두 팀 에게 살짝 반했었다. 그중에서도 이대 '오만과 편견'팀을 별도 언급했던 이유는 날카로운 비판이나 주장의 정당성을 떠나 토론에 임하는 태도에 반한 지극히 주관적 이유였다. 서울역 치욕인가? 문화재인가? 논란에서 서울대 '쾌담'팀에 비해 논리로 압도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아우슈비츠 에피소드가 승부를 갈랐는지는 관심 없었다. 누구 손을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훌륭한 토론의 전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명지대팀을 언급 하지 않은 이유 역시 같은 맥락이다. 강팀이란 생각은 들게 해주었지만 토론자체가 일방적이어서 재미가 없었기에.

8강전에서 만난 두 팀의 토론은 결과부터 말하자면 이대팀의 자기붕괴 과정이었고 그것을 곱씹는 것은 꽤 아프다.

위의 토론내용 요약에서 전반전은 세세하게 후반전은 대폭 축약했다. 이미 승부는 전반전에 끝났기 때문이기도 하고, 후반전의 핵심은 기회평등이나 성장과 분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토픽이 존재했으나 쟁점이 되지 못하고 선언에 그친 탓이기도 하다. 이대팀의 논지전개가 동어반복과 그 변주(일탈을 포함한)의 불협화음으로 이어지며 예정된 자멸의 길을 걸어갔을 뿐이다.
 

포지셔닝의 중요성과 쟁점의 범위

'부자가 죄인인가?'라는 주제의 토론배틀에서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나는 주저없이 반대입장에 설 것이다. 정죄하고 있는 부자가 하늘의 별 만큼 많아도, 자본주의의 모순이 눈에 밟혀도 말이다. 쉬운길을 놔두고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하고 싶지 않다. 앙드레 지드도 아니고.

반대입장이라면,

모든 부자가 죄인은 아니다. 돈이 싫은가? 부의 창출은 징죄의 대상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모순은 제도적 문제이지 부자의 문제로 환원할 것이 아니다. 부자가 죄인이라면 원시공산제 사회로 돌아가자는 것일진대, 현대사회에 적용할 수 없는 망상이다...

100가지는 몰라도 20개쯤은 댈 수 있을것 같다.

반면 찬성입장에서 가능한 방법은,

부의 형성과정에 떳떳한 부자가 별로 없다(떳떳한 부자도 많다). 노력과 땀이 아닌 부동산붐과 정보독점으로 인한 부(부동산 거품은 꺼지고 인터넷 세상이 열렸다), 그리고 세습적 부는 죄악이다(일부의 이야기일 뿐). 이에대한 적절한 징벌, 즉 과세제도 개혁이 필요하다.(상속세율 높다. 탈법적 상속은 일부 부도덕한 부유층의 문제) 개인의 도덕성에 의존하기엔 도를 넘어섰다.(인간을 신뢰하지 않습니까?) 

애초에 반박되기 너무 쉬운 미끼들 밖에 준비하지 못하겠다. 그러기에 상대논리를 끌어내서 반박하는 기획을 할 것 같다. 그것도 쉽지는 않겠지만, 논점을 축소시켜서 공간적으로는 우리나라, 시간적으로는 근현대를 아우르고, 정죄의 대상은 부 자체나, 부자일반이 아닌 즉, 대한민국 재벌로 촛점을 맞추는 수 밖에 없다. 부자가 죄인이냐에 누가 미쳤다고 모든 부자를 상대로 돌팔매를 던지겠냐고 오히려 시치미 뚝떼고 반문하고 상대가 그 밖의 이야기를 하면 논점일탈이라 물어뜯어대며 버티는 수 밖에. 왈왈!

그런데, 이대팀은 부자체를 대상으로 하고, 자본주의의 원칙을 공격한다. 명지대팀의 수고를 한층 덜어주었다. 이대팀이 취해야 할 전략은 사안을 쪼개고 쪼개서 구체화 시켜도 모자를 판인데 일반화시켜서 시작했으니 말이다. 입론에서부터 명지대팀은 '편견에 반발하여'라는 반박으로 나서겠다고 선언한다. 이대팀이 어떤 쟁점으로 나오든 일반화해서 반박하겠다는 선언이다. 찬성과 반대로 나뉜 입장에서 반대입장에겐 지극히 당연하고 타당한 전략이다.

일방적으로 흘러간 토론은 그렇다치고, 그럼에도 그 중 몇가지 재미있는 포인트를 발견했다.


논점과 상관없는 재미있는 포인트 1

종부세 폐지('완화'가 공식적 표현이지만 실제 '폐지'나 마찬가지니까 이해하자)는 기득권층, 그리고 부의 집중의 폐해를 방증한다는 이대팀의 주장에 명지대팀의 반박은 헌법재판관이 부자라고 부자를 편든다는 것은 억측이라 반박한다.
과연 그럴까?

다음은 종부세 관련 헌재판결에 관한 자료들.(예전에 다음아고라에서 퍼왔는데 정확한 출처는 잘 모르겠다. 에잇.)


1. 김희옥 재판관 종부세 3,500만원에서 790만원으로 줄어
2.
이공현 재판관 2,600만원에서 557만원
3.
목영준 재판관 2,100만원에서 390만원
4.
조대현 재판관은 종전 158만원의 종부세를 내지 않게 된다.
 8
재판관 별로 최대 2,100만원에서 최소 80만원까지 세금혜택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상 아고라 인용)


헌법재판소에서 민법을 근거로 합헌과 위헌을 판단하는게 얼마나 자주 있는 일인지, 그리고 정당한지 모르겠지만 그 근거란다. 입법목적은 이해하지만 과세는 하지말자라는 결론이 된 셈인데 역시 고개가 갸우뚱 해진다. 그리고 마지막 부동산 재산 신고내역을 보고 2가지 점에서 놀랐다. 하나는 의외로 서민에 가까운 헌법재판관이 있다는 점이었고, 또 하나는 어쩜 저런 우연(?)도 있나 하는 점이었다.


논점과 상관없는 재미있는 포인트 2

기회평등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이대팀의 주장에 대한 반론으로 명지대팀에서 "불평등은 자본주의의 속성이다."라고 주장한 점이다. 한치의 의심없이 믿고 있고 지극히 당연한 말인데. 서글프다. 그런데 그게 자본주의의 속성이전에 인간사회의 속성이잖아? 근데 요즘도 학교에서 평등하다고 세뇌하고 있나? 이 거짓말쟁이들.


논점과 상관없는 재미있는 포인트 3

거의 마무리 단계에 가서, 명지대팀의 "부자의 사회적 책임은 어디까지인가?"로 시작해서 "부를 추구하는 모든 인간이 원죄라도 가졌다는 겁니까?"에 대해 이대팀이 "부 자체가 죄이고, 너, 나, 우리 모두는 죄인이다." 선언.
잠깐 갸우뚱 하게 만든다. 맞는 말 같기도 한데?


승부에 집착해보며

명지대팀의 일방적 승리에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중간평가에서 시민평가단의 결과가 29:1로 나왔는데, 최종평가에선 25:5가 나왔다.(심사위원 평가를 합해 최종 47:13의 결과다.) 대체 어디에서 이대팀이 득점할 수 있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동정표라면 뭐 마음은 이해하지만, 만약 그런 연유라면 다시는 심사하는 입장에 서지 마시길 바란다. 혹시라도 그 마음으로 승부가 뒤집어 졌다면 어쩔뻔 했니? 

나도 응원하던 팀이 떨어져서 가슴 아프다. 하지만 토론술이 진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을 위안으로 삼고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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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붕대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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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highdeth.tistory.com BlogIcon Highdeth 2010.09.12 02: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애석하게도 포스팅하신 편은 제가 못본 것들이라 코멘트를 하기 힘드네요. 붕대소녀님 글 만으로도 충분히 댓글을 달 수 있겠지만 딜레이를 좀 걸어두려 합니다.^^

    • Favicon of http://boongdae.tistory.com BlogIcon 붕대소녀 2010.09.12 03: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정이 과잉되어 있어요. 제가. 애초의 기획부터 객관성 따윈 배제되어 있었지만, 감정이나 감상보다 그저 해석작업에 충실 하려 했는데, 묘한 기분입니다.

      상기되는 아이디어 하나는 "시간을 두고 생각할 수록 정서적 거리는 더 가까와진다."라는 테제입니다. ㅋ

      하룻밤이면 끝내지 싶었던 이 몰아쓰기는 여러가지 이유로 띄엄띄엄 하네요. 넉넉하게 잡아 3시간 정도면 하나씩 넘어갈 줄 알았는데 뭔가 요즘 머리가 나빠진 기분이에요. 이럴 땐 쓰기보다 읽는게 딱인데. ㅋ

 

21세기 외교 -  親美가 우선인가, 親中이 우선인가.
친미가 우선이다 VS  친중이 우선이다

부산대학교(토론스타P) - 친미가 우선이다
"미국의 패권과 힘, 다자간의 협상을 잘 활용해야 21세기 동북아의 외교 강자로 우뚝 설 수 있다."

전북대학교(카이케로) - 친중이 우선이다
"대한민국이 외교의 강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국과의 파트너쉽이 필요!"

 



좀 더 과감히 생략과 압축으로 정리할 수도 있었지만, 시간도 많이 지난 만큼 최대한 양측의 주장한 바를 시시콜콜한 것까지 가급적 살려놓았다. 물론 엄청난 축약일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붕대의 프레임으로 바라본 것이고 필요한 경우 첨삭도 가했다. 대략 이런 것일 테지 하고. 실제토론은 편집을 통해 방송되고 방송된 분량은 재편집되어 다시보기에 올랐다. 오해가 생기기 딱 쉽지만 그래도 핵심적 내용이 다치진 않으리라.

이유가 뭐가 되었든 좋다. 이런 열띤 토론을 기다렸다고 공공연히 기대했었다.
내가 꼽은 8강전의 하일라이트. 그만큼 기억에 많이 남는다. 


예상 포인트

우선 외교정책에 있어 친미와 친중은 현안이고, 대학토론배틀에서 현안을 소재로 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완전 묵은지 리뷰를 쓰는 지금 우리 외교부는 집안단속 하느라 어느쪽도 경황이 없으리라 여겨지지만, 예상한 논지전개방향은 이랬다. 

부산대 - 외교정책 변화는 신중히 결정해야 될 문제. 따라서 기존 노선(친미)를 유지하면서 친중을 포섭해야.
전북대 - 시대에 부응하는 외교정책 변화가 필요하다. 다각외교는 역사로 증명된 약소국의 유일한 선택. 

대략 이런식. 아마도 제대로 힘겨루기 할 부분은 상대논리의 약점인 친미기조 유지에서 친중노선 양립가능성 논쟁과 다각외교는 현재 친미정책으로 유지해온 많은 국제적 지위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라는 실리적 차원의 문제제기가 아닐까 쉽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실제 토론은 내 예상과는 많이 달랐고 부분적으로는 전혀 반대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신선했다.


전반전

입론에서는 부산대팀이 공격적이면서도 명료한 주장을 한다. 경제적 득실문제, 신뢰의 문제, 안보문제 3가지로 토론의 쟁점을 가져가자고 주장한다. 반면 전북대팀은 외교노선 다각화라는 대의를 갖고 친중노선이 그 출발점이 될 것이라 주장한다. 보통 이렇게 되면 전북대팀의 공세에 부산대팀이 반박하는 수순이라 생각했는데 또 예상은 빗나갔다.

주도권은 부산대팀이 먼저 가져간다. 전반전에서 시종일관 부산대팀의 공격에 전북대팀은 반박으로 일관한다. 부산대의 공격의 강도에 비해 전북대의 반박이 꽤 타당했다고 보고 중간평가 결과는 박빙이라 생각했는데 전북대팀의 압승이었다. 아마도 우리 경제의 대중무역의존도에 관한 논의, 그리고 외교관계를 애인관계로 볼 것이냐, 친구관계로 볼 것인가에 관한 논의에서 전북대팀의 논지가 지지를 얻은 것이라 본다. 

주목한 부분은 꾸준히 공격한 부산대팀의 논지전개 부분이었다. 부산대팀은 우리 외교방향이 친중적이다. 그런데 국제사회가 바라본 우리외교는 친미다. 라는 주장을 한다. 이런 주장으로 무엇을 얻으려 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국제사회에서 바라볼때 우리가 친중외교를 펼친다면 미국을 소외시킨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으리라 보지만 잘 와닿지 않는다. 무엇보다 현상태가 친중외교라는 주장의 근거가 무역량외에 제시할 것이 없다면 굳이 이끌어 낼 이유가 없었던 이야기라는 뜻이다. 우리 대북교역량 보다 못한 나라들을 공격이라도 할 것 아니라면 말이다.

추측에 불과하지만 부산대팀이 초반부터 공격일변도로 갔던 이유는 그만큼 준비를 많이 해왔고 자신이 있었다는 뜻도 되고, 예상반론에 대한 다른 공격수단도 준비 되어 있었을거라고 본다. 그런데 전북대팀이 예상을 살짝 벗어난 반론을 해서 살짝 말린듯도 하고. 결과적으로 부산대팀의 논지 전개는, 그냥 멍하니 듣기엔, 우리외교가 대체 친중적이라는 건지 친미적이라는 건지 혼란스럽게만 만들었던 듯 싶다. 다시 말해 현재 우리 외교정책에서 친미 포션이 줄어든다고 굳이 주장하거나 적시한 부산대팀의 논지는 전북대팀이 친미정책을 적극적으로 비판하지 않은 까닭에 별로 부각되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후반전

후반전도 부산대팀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소모한 것은 부산대팀에서 발화한 "중국, 믿을 수 있읍니까?" 로 촉발된 신뢰논쟁이었다. 열기는 완전 달아올랐다. 디오니소스적으로. 몇몇 패널과 응원단은 과도하게 흥분도 했지만, 그건 욕하지 말자. 그러지 않고 가만히 냉정을 지키고 있다면 좀 가증스러울 것 같으니까.

외교문제에서 신뢰를 논한다는것은 수사학적 표현에 불과하다. 을사오적이 그땐 일본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라고 주장한다면 뭐라 답해야 할까? 그런의미에서 신뢰보다는 실익을 논하는 것이 옳다라는 내 입장은 분명하다. 하지만 대학생의 입에서 튀어나온 신뢰할 수 있읍니까라는 질문은 - 그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 신선했다.

그렇게 빼든 부산대팀의 히든카드에도 전북대팀은 전쟁상황과 평화유지상황으로 국면을 나누는 것으로 화답하는데, 이 부분에서 부산대팀이 다소 준비가 덜 되었던 듯하다. 공격을 시작하고 기세있게 몰아간 점은 훌륭했지만 말이다. 특히 전북대팀의 한미합동훈련을 예로 든 반론에 '미국을 이용한 대중국 견제'라는 답변은 근거가 강하게 제시될 필요가 있었다고 본다. 시기상으로나 작전내용으로 보나 대북압박의 목적인데 이를 대중압박으로 당연히 연결 짓기엔 무리가 있다. 우리 정부가 중국에게 협력을 요구했을 때, 오히려 한미합동훈련을 빌미로 외교적 공세를 가한쪽은 중국이었다는 점은 부산대팀의 논리와 합치하지만 한미합동훈련에 관한 외교적 마찰에서 우리나라 VS 북한, 미국 VS 중국 이라는 구도가 형성되었고 미국 VS 중국 이라는 트랙에 우리는 소외되었던 것이 사실이니까.

신뢰의 문제를 외교정책의 기준으로 생각하는 아이디어는 참신하긴 하지만, 그 본의에 공감 못할 이유는 또 있다. "적어도 중국보다 미국이 더 믿을 만 하기에..."라는 주장 때문이다. 누가 더 믿을 수 있는가로 외교정책을 결정하자고 신뢰의 문제를 꺼내들었다면 외교의 본질을 망각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신뢰관계를 쌓아가는 것이 외교의 본질 아니던가? 주장대로라면 재중외교관을 철수시켜야 할지도.

게다가 이 주장의 근거는 선제 되었던 한미동맹과 북한과 중국의 군사적 동맹이 될텐데 전쟁을 전제해야만 성립하는 것이고 이것은 앞서 국면을 나누어 해석했던 전북대팀의 반박을 넘어서지 못했다. 중국 신뢰할 수 있는가를 상대 토론자에게 물으며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친중외교의 부당성을 적시하고 친미외교의 타당성을 주장하는데에 더 집중했어야 했다고 본다. 다시 말하지만 신뢰관계라는 것은 쌓아가는 것이고 변화하는 것이기에, 현상만을 문제 삼을 수도 없는 문제일텐데 공격 자체는 통쾌할 지 몰라도 그 질문이 되돌아 올경우의 근거가 부족했기에 의미를 남기지 못했다.


정리하며

새삼스럽지만 토론의 장에서 포지셔닝과 주도권은 중요하다. 핵심은 '중국을 신뢰할 수 있는가?' 밖에 기억나지 않지만 강렬한 한방을 날리고 전체적으로 주도권을 갖고 갔던 부산대팀과 '대미정책의 폐기가 아닌 대중 외교의 시작으로 자주적 외교정책 수립하자'는 다소 교과서적인 결론을 견지하며 차분차분 반박해내던 전북대팀의 대결. 근소한 차이로 승자와 패자가 나뉘게 된 이유일 것이다. 논리의 대결보다 의견의 대립이 강했지만(토픽의 속성탓이라고 본다) 토론의 대의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다른 토론 주제하의 동어반복에 비한다면 시사점도 많았고 팽팽한 긴장감도 있었다는 점에서 양팀 참가자분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립서비스가 아니라 진심이다.)

다만 애초에 승리는 반중국 발언 일변도였던 부산대팀에 가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친미정책의 정당성은 별로 언급되지 않았고 오직 처음부터 부산대팀의 기획은 중국 깎아내리기에 치중했다. "차라리 친인도 정책"이라는 발언이 그 증거다. 외교적 표현이 허울뿐인 수사로 점철된다고 외교정책에 관한 토론이 수사학적으로 이뤄져서는 곤란하다. 거친 단순화가 되겠지만, 부산대팀의 논지를 정리하다보니 남은것은, 별 다른 대안 없으니 원래 하던대로 친미기조를 유지하자. 섣불리 바꾸다간 큰일난다. 정도가 되겠다. 전북대팀의 주장이 참신하거나, 대단한 것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토론의 흐름은 전북대팀 주장의 검증작업이 된 셈이다. 토론의 주도권을 시종일관 잡고 이끌었던 부산대팀에 의해서 말이다.

쓰고나니 일방적으로 부산대팀 이야기 밖에 안했다. 이것 역시 아직도 맴도는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중국, 믿을 수 있습니까?" 탓인 듯 하다. 꽤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승부를 떠나 우리의 경제문제, 안보문제를 외교적 관점에서 풀 때 고려할 사항중 직면한 문제는 대북문제이라는 점인데, 대북문제를 양팀 다 직접대화가 현실적으로 무리라고 보는 점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물론 대중, 대미외교를 통한 우회적 전략이 폐기되어야 할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는 남북합의서도 만들었었고, 정상회담도 가졌고, 지금도 정부, 민간 채널이 존재한다. 천안함 정국과 북한의 권력이동문제로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게 되긴 했지만 말이다. 부산대팀의 한 학생이 남북문제는 직접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크게 공감했는데. 곧바로 노선을 수정하는 것을 보고 느낀 바이다.


군더더기 덧붙임

요즘 유명환장관실각과 외교부특채사건으로 뜬금없이 재조명을 살짝 받고 있는 송민순 현의원 외교부장관 시절 포럼발언을 하나 발견했다. 인용문은 짧긴 하지만 참여정부의 통일정책, 즉 대북정책과 대미정책을 말하는 것이라 여겨지는데, 친미와 친중으로 나뉘어 토론할 때, 이런식의 유연함이 필요하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I have to say that armistice is armistice.  Armistice is the truce, the stopping of the war -- technically we are at war.  So in this matter I have to approach from two track -- one is informality from armistice to a peace regime, from truce to peace regime.  And the other one is in substance.  We have to have a mutual trust and constant building measures in place including the normalized relations between the parties concerned. 

The one is the inter-Korean relations should be deepened.  Presently, the inter-Korean relations are not normal.  We cannot move freely to North and to South.  We cannot allow the free flow of information or goods and services in an inter-Korean track. 

And between -- the United States and North Korea are virtually at war.  And without the normalizing relations between Pyongyang and Washington and between Pyongyang and Seoul we cannot say there is peace.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2007.6  출처 http://www.journalog.net/kingjs1999/12272  


부연하지만 '이런식의 유연함'이란 대미외교에서 우리의 대북정책을 설명하는 방식을 뜻하는 것이고, 미국무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세련된 비판도 깔려있다는 점에서 표현한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외교문제는 정말 어렵다. 그 어렵다는 외무고시를 패스한 똑똑한 사람들이 바보짓 하는 것 보면 알 수 있다. 우리 외교가 근대 세계사에 있어 가장 효과적인 외교정책중 하나로 평가되는 20세기 초중반의 태국이 살아남은 방식에서 한 수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되새김질 하게되며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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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붕대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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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라운드> 혼전 임신으로 생긴 아이, 낳아야 하나?

찬성(낳아야 한다) VS
반대(낳지 말아야 한다)

·
찬성 - 성신여자대학교
“낙태 허용은 태아의 생명권을 존중하지 않는 임시방편일 뿐”
· 반대 - 고려대학교
“낙태는 선택의 문제. 여성의 자율권을 존중해야 한다!




16강전부터 인기를 끈 화려한 말빨(?)의 성신여대 레츠팀과 음.. 고려대 잡담팀의 대결이라 일단 재미있기는 하겠구나라는 생각으로 들여다 보았다. 사실 16강전에서는 양팀 다 고전했다고 본다. 성신여대팀의 경우 논란을 일으킬만한 발언들로 후폭풍까지 맞은 걸로 알고있고, 고려대팀의 경우 상대였던 이화여대 엣지팀이 결코 만만치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도 내심 성신여대팀의 승리를 점치며 들여다 보게 되었다. 결과는 예상대로(?) 성신여대의 승리였지만 여튼 16강전에 비해 발전된 모습을 보인쪽은 결과와 다르게 고려대팀이었다고 평가한다.

생명윤리와 책임의 문제 VS 권리의 문제 의 대결이었지만, 논의는 진행되지 않고 제자리를 맴돈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포인트는 다소 뻔해진 논의진행과정보다 몇몇 실언들이었다.

성신여대팀의 "수정이 되는 순간부터 생명이다." 발언에 고려대의 "사후피임약은 사실상의 낙태다."라는 반론은 적절하고 통렬했다. 이는 말꼬투리 차원의 반격이 아니었기에 토론초반 성신여대팀은 스스로 무너지는게 아닌가 할 정도의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아마 편집된 방송분보다 더 큰 충격이었으리라 짐작된다.

후반에 들어서는 성신여대팀의 "태아에게 기본권이 주어져야 한다"는 논박의 여지가 있는 의견에 고려대팀은 반박을 택하지 않고 "태아에게 의지가 없다"고 말려들고 만다.

제시된 논거와 상관없이 이 두가지 실언이 결과적으로 승부를 가른듯 하다. 석연치 않지만 말이다.

성신여대팀이 후반에 역전을 한 결과로 나왔는데 나는 공감이 되지 않는다. 논의의 주도권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법적인 문제, 윤리문제, 행복의 문제를 차례차례 이끌면서 논점을 계속해서 희석시켰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거기에 말려든 것이 고려대팀으로서는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고려대팀이 점수(?)를 땃던 전반부의 성신여대팀의 논지전개가 논리적으로는 자가당착에 빠질지라도 심정적으로는 더 동감하게 된다. 생명윤리를 말하며 예외적으로 범죄로 인한 원치않는 임신의 경우 제한적으로 허용하자라는 의견은 아마도 스스로도 모순이 된다고 판단 했을것이고 아마도 반격에 대한 준비도 했을것이다. 솔직히 원론적인 이야기만 할것이라면 예외없는 생명존중이 논지를 전개하기에 편리했을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는 것에 스스로 동의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보조패널간의 질답중 고려대팀 쪽에서 만약 당신이 혼전임신을 하게되었을때,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낳을것인가? 라는 질문에 한치의 주저함 없이 낳을것이다. 라고 대답하는 것을 보았다. 아마 누구라도 실제 그 상황이 되기 전까지 장담하지는 못할 일이다. 닥쳐보면 생각이 바뀔수도 있는 문제다.
하지만 나는 그 발언을 신뢰한다. 편견에 치우친 감상이지만 - 생명체기준논쟁을 제외하고 - 성신여대팀은 자신들의 주장과 생각의 싱크로율이 100%인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결과론이지만 정서적인 접근은 오히려 고려대팀이 적극적으로 했어야 될 문제가 아닌가 싶다. 윤리적 문제만큼 권리의 문제는 구체적으로 와닿지 않는다. 우리는 쉽게 타인의 윤리적 행위에 대해 직관적으로 판단하지만, 권리문제는 자신의 문제가 아닌이상 이성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권리문제에 공감을 얻고 싶었다면 오히려 감성을 자극하는 사례를 적절히 구사했더라면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양측의 논의과정에서 실수만 부각되고 논점이 사라진 것이 제일 큰 아쉬움일 것이다. 
주된 이유는 상대의 주장에 섞여있는 공통점을 빠르게 이해하지 못한 점이 아닐까? 낙태시술이 위험하다는 것에 같은 입장임을 후딱 인정하고 넘어가야 했었고, 산모가 낙태를 선택할 경우 살인인가 하는 징벌적 문제가 더 크게 대두되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단순히 사회적편견으로 치부하기엔 근거가 제시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후반부의 논의에서 낙태를 앞두고 손익계산을 하는 산모의 모습을 상상하며, 몸서리 쳐지는 것은 생명의 문제를 양쪽다 실용적인 잣대로 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부분이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토론자의 윤리적인 태도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생명의 문제에 대해서 논의를 확장하고 집중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생명의 문제는 태아의 생명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닐진대, 산모의 생명문제가 그저 권리의 문제로 치환되고는 더이상 드러나지 않은점은 아쉽다.


토론의 현장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채 이런저런 상황을 상상해보는 것은 쉽다는 것을 안다. 반대로 직접 참여했을때, 당연한 것도 놓칠 수 있고 상대 논리의 진위판단과 건전성을 점검할 새도 없이 말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도 안다. 고려대팀이 16강전에 비해 나아진 모습은 상대논리를 빠르게 파악하는 점이었는데, 후반에 가서 그 능력은 사라졌고, 성신여대팀이 16강전에 비해 나아진 모습이 없는 것은 여전히 자기함정에 빠진다는 점이다.

그런의미에서 배틀에서 성신여대팀이 승리한 것은 기술적 승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예선부터의 과정을 거치며 스스로 우승이 목표라는 당위 이상의 목표를 발견했으리라 믿는다. 승부사로서의 기질이 아닌 멋진토론자의 모습을 4강전에서는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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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붕대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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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goi.tistory.com BlogIcon parrr 2010.08.16 10: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 잠시 생각하게 하는 주제군요.

  2. Favicon of http://organicfarmer.tistory.com BlogIcon 꿈이촌놈 2010.08.16 11: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낙태문제" 역시 답을 찾기가 어렵죠. 윤리적이냐. 현실적이냐. 에효.
    글쓰는 재주는 타고 나신듯... 부러워요.. 진심입니다.

  3. Favicon of http://highdeth.tistory.com BlogIcon Highdeth 2010.08.16 12: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낙태 논의가 진전없이 흐른다는 것, 정치적인 맥락으로 오용된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아직 선진국 반열에 끼기엔 한참 멀었음을 반증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68혁명 당시 여성들은 왜 낙태 합법화를 외쳤는가?', 'OECD 국가 중 국민 대다수가 카톨릭 신자인 스페인, 폴란드 등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가 낙태를 합법화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낙태 합법화 이후 선진국은 어떤 변화과정을 거쳤는가?' '낙태를 법적으로 금지한 이후 어떠한 징후가 나타나게 되었는가' 역사의 보편성과 개별성을 연결시켰으면 보다 흥미로운 토론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더군요. (저는 통계를 인용한 토론 방식은 그닥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싱크로율 100%는 공감 100%입니다^^ '여대'에서 낙태 합법화를 반대하는 견해가 저에겐 조금 신선하게 다가오기두 했구요. 제 3자로 인해 간접적으로 낙태를 경험한 저로서는, 성신여대분께 감정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물론 저는 낙태 허용을 찬성하는 입장이긴 하지만요.

    낙태를 체험하는 쪽은 여성이라는 생각, 그리고 민감한 주제이니 만큼 남성으로서 제한적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낙태 이전에 섹스에 대한 논의가 다층적으로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군대에서 떠벌이는 음담폐설, 영웅적인 경험담 따위의 마초성 짙은 낭설은 이제 안드로메다로 보내고 말이죠. 이 문제는 숨기고 감추면 문제가 더 커지는 걸 많이 봐와서요. 개방된 성문화 만큼, 열린 시선과 다양한 시각이 공존했으면 합니다.

    • Favicon of http://boongdae.tistory.com BlogIcon 붕대소녀 2010.08.16 13: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말씀하신 다룰 수 있는 논제들 다 공감가는 군요. 저역시 이번 토론배틀을 눈여겨보면서 계속보이는 문제가 의미없는 통계자료의 남발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반론을 위한 인용은 긍정적으로 이해하려 하지만 자신의 논거로 사용하는 것은 의미가 반감되더군요. 통계의 허구와 귀납에 대한 불신탓일까요? ㅎㅎ

      90년대 이후 대학가에 성에 대한 담론들이 자유롭게 쏟아졌고, 요즘의 대학생들은 아마 충분히 성문제에 관해서도 재미있는 토론을 보여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성문제는 한참 혈기왕성한 사람들의 의견이 진국이겠죠.^^

      3라운드가 외교정책에 관한 토론이었는데, 친미냐 친중이냐의 문제였습니다. 개인적으로 8강전 4주제중 제일 재미있었는데, 아직 생각이 정리가 안되어 리뷰를 못하고 있네요.

      방문해주시고 좋은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Favicon of http://highdeth.tistory.com BlogIcon Highdeth 2010.08.16 13: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볼 때마다 마크 트웨인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거짓말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

      그리고 서울대 3김시대는 차분하게, 다시 돌이켜본 후 댓글을 달도록 하겠습니다. 공교롭게도 2달 전 즈음에 서울대생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거든요. 우선 하나만 휙 던지고 가자면.., "촌놈들의 역사주의" 정도가 되겠네요^^;

    • Favicon of http://boongdae.tistory.com BlogIcon 붕대소녀 2010.08.16 14: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촌놈들의 역사주의... 가늠은 안되지만 기대됩니다. Highdeth님 etude의 대상은 세상만사일것 같다고 함부로 추정해보는데요. 그곳에 정리해주시고 트랙백 붙여주시면 더 감사할 것 같습니다. 산문시와 같은 님의 글이 댓글로 소모되는 느낌이라 아까운 마음이 들것 같아요.

    • Favicon of http://highdeth.tistory.com BlogIcon Highdeth 2010.08.16 21: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시 철학을 취미로 하시는 분은 무서워요-_-;;;;

      사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흔히 서양사, 동양사, 한국사로 구분하곤 하는데... 저는 역사철학을 독학으로 하고 있고, 대학원에서 보다 세밀하게 배우려 하고 있어요, 3분야에서 역사철학을 기반으로 하는 서술은 아무래도 사양사 쪽이 두드려져서 서양사, 그리고 현대사를 전공할 생각이에요. 작년엔 거시사에 천착해오곤 했는데, 올해엔 미시사에서도 '일상사'에 뿌리를 두려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세상만사'라고 말씀하신건 정확히 집어주신 거죠^^

      그리고 말씀하신대로 트랙백 붙여드리겠습니다.^^

    • Favicon of http://boongdae.tistory.com BlogIcon 붕대소녀 2010.08.17 04: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무섭긴요. 소뒷걸음입니다. ㅋ
      제 나름의 개똥철학의 정의는 엄밀한 학으로서의 철학에 대한 소극적 반발일 뿐입니다. 적극적 반발을 하려면 뭘 좀 알아야 할텐데 아는게 쥐뿔이 없어서 소극적인거지요. 아는척은 잘하는데 큰일입니다. ㅎㅎ

  4. mjkim 2010.08.17 16: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냉정한 평가 감사합니다.
    3R,4R리뷰도 볼수있을까요?

    • Favicon of http://boongdae.tistory.com BlogIcon 붕대소녀 2010.08.17 18: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다시 읽어보니 역시나 뭔가 부족한 글입니다. 냉정한 평가라니요... 그저 뒷담화겠죠. 물어뜯기는 원래 자신있지만, 워낙 다들 죽자고 덤벼대는 와중에 저까지 할 필요는 없을듯 하구요. ㅎㅎ

      3,4라운드 다시보기를 한 번 하고 써볼까 하는데 안올라오네요. 사흘 지났더니 기억이 자극적인 몇가지 밖에 안남아서 못쓰고 있습니다. 시의성은 놓치겠지만, 어짜피 제 리뷰 첫째 목적은 제 공부니까요. ㅋ 여튼 늦더라도 다시보기 되는대로 포스팅 하겠습니다.

  5. 다시 2013.04.07 23: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낙태에 대한 찬반 양론은 언제까지고 존재할 것 같아요...
    글을 참 잘 쓰시는 것 같아요 잘 보고 갑니다.


<1라운드> 가난은 국가의 책임인가?

찬성(국가의 책임이다)
VS 반대(개인의 책임이다 )

·
찬성
- 연세대학교(언금술사)
“가난은 사회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된 것,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 있어야“
· 반대 - 서울대학교(3김시대)
“국가는 슈퍼맨이 아니다, 가난은 철저히 개인의 책임”



토론에서 주도권을 잡고 간다는 것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그리고 합리적이고 타당한 주장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것이 동의를 얻는 것이 아님을 확인시켜준 토론이었다.


처음부터 분명한 논지 개진이 돋보인 한 판이었다. 개인의 빈곤문제에 대해 국가의 책임을 얼마나 물을것인가? 국가가 해결해 준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다. 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결국 논의는 해줄 수 있는데 왜 안하느냐? 와  하려고 하는데 안되는 것을 어찌하냐? 로 흘러갔고 결과적으로 토론의 주도권을 잡는데 성공한 연세대팀의 승리로 돌아갔다. 승패를 떠나서, 양팀의 논거제시 수준은 우열을 가리기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토론이 더디게 진행된 것은 빈곤의 정의, 국가책임=정책문제 이라는 공통분모를 빨리 합의하고 다음으로 나가지 못한 탓일 것이다. 어느 한팀의 문제도 아니었고, 토론시간의 문제라고 봐야겠다. 시간이 더 주어졌다면 보는이의 입장에서 지루해 질 일이겠지만 결과는 모를 일이었다. 사회와 국가에 대한 정체성 논란이 계속되는게 바람직 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서울대팀으로서 아쉬운 점은 그 부분을 제대로 부각하지 못했다는 점일 것이다. 국가를 변호하는데 힘을 너무 뺀 나머지, 자신들의 논거를 충분히 어필하지 못한 상태로 상대의 논거를 반박하는데 집중하게 된 것이 패인이다.

후반부에 가서 구체적인 사례들에 대한 의견개진들이 나온점은 긍정적으로 봐야겠다. 자활의지와 기회평등, 교원평가제, 워킹퓨어 등에 대한 논의에서 총론은 연세대팀의 일관된 논지 개진에 손을 들어줘야 겠지만, 각론에서 서울대팀의 반박은 합리적이었다. 다만, 반박후 주도권을 못가진것이 문제다. 제대로 반박되어지기전에 또 각자의 이야기만 늘어놓게된다.

최후논변에 가서 이 문제가 다시금 드러난다.

서울대팀의 국가의 기능은 돕는것이고,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결론은 이해는 가지만, 불치병 환자의 예를 든것은 잘못된 유비이다. 유비 자체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고, 부적절한 유비였다는 말도 된다. 실제로 대부분의 불치병 환자가 의사의 탓을 하고 있다면 오히려 적절한 예가 되었지 않았을까? 상대토론자의 논거를 근거없는 불평이라 논평하게 되었을테니...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니, 문제는 있지만 어쩔수 없다라는 불가지론의 견해를 결론으로 내세운 셈이다. 불가지론이 이성적 동의를 구하기 힘든 점은 본인들이 더 잘 알것이라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반박이 아니라 그저 방어가 되어버린 최후논변은 그 전에 주도권을 잡지 못한 팀의 입장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반면, 연세대팀은 오히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부연한다. 덜 가진 사람들을 국가가 도와주는게 당연한 것 아니냐. 서울대팀이 여기에 동의하고 논의를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상대편 토론자가 국가무용론자인양 부드럽게 정리해준다. 논점 없음이 간파되더라도 굳이 반박할 필요를 남기지 않았다.


16강전 리뷰를 할 때, 연세대 언금술사를 주목해보고자 한다는 뜻을 남겼다. 8강전이 실망스럽다는 뜻은 아니고, 더 나을 것이 없었다는 감상이다. 두 팀은 대학토론배틀이라는 이벤트가 끝나고도, 한 번쯤 다시 만나 이어보는 것은 어떨지? 배틀에서 승리한 쪽이나 그렇지 않은 쪽이나 할말이 너무 많이 남은 듯하다. 다음 라운드로 진출한 연세대팀은 4강에서는 재빨리 상대의 논의를 정리하고 동의하는 부분을 재빨리 뛰어넘는다면, 훨씬 경제적인 토론을 이끌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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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9.02 07: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boongdae.tistory.com BlogIcon 붕대소녀 2010.09.02 23: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줄은 몰랐네요. 저에겐 밀린 숙제로 남아있어서 4강 결승까지 정리좀 해야할텐데, 좀 정나미가 떨어지는 이야기를 곁다리로 많이 듣게 되네요. 그럼에도 이런 장이 열린다는것 자체는 무조건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해가 거듭된다면 여름을 더 달구는 Hot Issue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요.^^*


닷새전 16강전에 대한 포스팅을 하고 이번엔 어찌됬건 긍정적 리뷰를 써봐야지 하고 스스로 다짐했다.
사실 이미 일어난 사태에 관해서 꼬집는 것이 쉽다. 음... 묶어놓고 패는데 대단한 기술이 필요한건 아니니깐.
그래서 일까? 역시나 끝장토론 시청자게시판은 비난일색에 가끔씩 비판이 올라온다. 격려도 의외로 있다. 훈훈하다.
어쨌든 객관적인 리뷰를 기대한다는 황송한 말도 들었지만, 내 생각일뿐, 무슨 객관성은 애초에 기대도 하지 말아주십사 한다.


토론의 수준을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하나만 꼽자면 그것은 아마 논거를 얼마나 명확히 제시하느냐에 달린 문제일것이다.
하지만 논거가 부족해도 승리는 할 수 있다. 이것이 내가 대학토론배틀을 보고 배운점(?)이다. 심사위원+시민토론단 의 정확한 심사기준은 홈페이지에 소개는 되어있지만 역시 정확하게 모르겠다. 심사결과에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동의한다. 하지만 심사평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부분이 있다. 지나치게 논리와 이성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논리와 이성이 합리적인 도구임에는 분명하지만, 토론자들이 때로는 감성이 합리에 우선한다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정언명법에 100% 동의하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 대학토론이라면 궤변도 교묘한 오류사용도 나는 반갑다. 상대가 그것을 박살내어줘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즐겁다. 실제로 설득의 기술에 효과적인 것은 논리만은 아니지 않은가.


보통의 끝장토론과 대학토론배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진행자의 개입여부다. 대학토론배틀에서 백지연씨는 토론내용에 일절 개입하지 않는다. 반면 보통의 끝장토론에서의 역할은 논의가 제자리를 맴돌거나 할때, 분위기 전환, 요약 등의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 어쨌든 평가에 불필요한 요소가 개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좋은 선택을 한 것 같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은 눈앞의 상대 토론자보다 심사위원과 패널들을 의식하는 듯 하기도 한다. 물론 배틀이니까 당연히 그렇다. 배심원 제도가 있는 법정에서 누굴 보고 이야기하는 변호사가 옳겠는가? 하지만, 그래서인가. 내가 기대하는 재기발랄함이 안나오는 건가보다. 참가자들이 안전한 길만 가려하는 유혹에 빠지지 않을까 의심된다.

아우 참, 또 비판이 시작되었다. 제대로된 비판도 아니면서 쉬운길이니까 계속 접어든다. 이러지 않으리라 했는데... 역시 나의 한계인가 보다. 나를 까세요. 까임에 익숙하지는 않지만 무덤덤해지려 노력하고 있답니다.
이 블로그의 본래의도로 돌아가야겠다. 내 맘대로의 개똥철학. 하지만 비난만은 삼가야 하겠다는 신념을 지키자.

다시보기 링크를 걸었더니 5분나오고 이어보려면 tvN으로 가라고 나오고, 결국 로그인을 해야 마저 볼수 있다는 것을 오늘 알았다. 난 내 블로그에서 그냥 주욱 보기를 원했던것 뿐이고~, 왠일로 퍼나르기를 허용해주나 했더니 역시나...
4강전이 방송되기전에 8강전중 가장 재미있었던, 부산대와 전북대의 3라운드와, 가장 안타까웠던 이화여대와 명지대의 4라운드 리뷰는 좀 제대로 쓰고 싶다. 한번만 더 보고 쓰고 싶은데, 다시보기는 언제 올라오는거니?...ㅠㅠ



들어가기에 앞서
16강전에서 추첨을 통한 포지셔닝을 했던것과 달리 8강전은 주제선택과 진영선택을 합의하에 자율적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적어도 토픽자체의 유불리는 이제 논외다.

다음 제목을 클릭하면 리뷰로 갑니다.



<1라운드> 가난은 국가의 책임인가?

찬성(국가의 책임이다) VS 반대(개인의 책임이다 )


· 찬성
- 연세대학교(언금술사)
“가난은 사회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된 것,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 있어야“
· 반대 - 서울대학교(3김시대)
“국가는 슈퍼맨이 아니다, 가난은 철저히 개인의 책임”

<2라운드> 혼전 임신으로 생긴 아이, 낳아야 하나?

찬성(낳아야 한다) VS 반대(낳지 말아야 한다)


· 찬성
- 성신여자대학교
“낙태 허용은 태아의 생명권을 존중하지 않는 임시방편일 뿐”
· 반대 - 고려대학교
“낙태는 선택의 문제. 여성의 자율권을 존중해야 한다!

<3라운드> 21세기 외교親美가 우선인가, 親中이 우선인가."

친미가 우선이다 VS  친중이 우선이다

부산대학교(토론스타P) - 친미가 우선이다
"미국의 패권과 힘, 다자간의 협상을 잘 활용해야 21세기 동북아의 외교 강자로 우뚝 설 수 있다.
전북대학교(카이케로) - 친중이 우선이다
“대한민국이 외교의 강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국과의 파트너쉽이 필요!

<4라운드> 부자는 죄인인가?

찬성(죄인이다) VS 반대(죄인이 아니다.)
  
이화여자대학교(오만과 편견) - 찬성
“서민들을 착취해서 얻은 부를 나누지 않는 부자야 말로 죄인- 
명지대학교(비주얼) - 반대
“자본주의 시장에서 부는 재원창출에 대한 노력의 댓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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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organicfarmer.tistory.com BlogIcon 꿈이촌놈 2010.08.16 11: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토론을 배틀로 한다는 생각은 사실 반대여요.
    누구의 생각을 가지고 이기고 진다라고 이야기 한다는 자체는 좀 싫어요.

  2. 언금술사 2010.08.18 00: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붕대 소녀님~ 글 정말 좋군요. 언금술사 패널로 나갔던 학생입니다.ㅎㅎ 이름까진 밝히기 그렇고..ㅎㅎ 이미 다 끝났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군요. 어쨌든 제가 본 리뷰 중에 가장 적절한 비판이었습니다.
    서울대와의 승부에서 논점 잡기가 정말 어렵더군요..님 말씀대로..게다가 시간 제한이라는게 있어서 현장의 저희는 계속 시계를 보고 말을 해야하다 보니.... 경제적인 토론을 위해 좀 더 노력하겠습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4강도 리뷰 부탁~~

    • Favicon of http://boongdae.tistory.com BlogIcon 붕대소녀 2010.08.18 14: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감사하다는 말씀부터 드려야겠습니다. 저는 덕분에 아주 유쾌한 여름을 즐기고 있으니까요. ^^

      이미 녹화가 다 끝난건가요? 이거 시청자 입장에선 좀 답답하군요. ㅎㅎ

      단순 감상+@ 를 해보고 싶은데, 한 번 보고는 제 머리가 나빠서 정리가 잘 안되는군요.

      다른 댓글에서 밝힌바와 같이 한참 뒷북이 될지 몰라도, 제 나름의 리뷰 올리겠습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tvN방침에 달린 문제겠지만 4학년이 아니시라면, 내년에도 꼭! 뵐 수 있었음 좋겠군요.

  3. 연대참가생 2010.08.29 08: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냐 이밑도끝도없이 주체감없는 해설은

    • Favicon of http://boongdae.tistory.com BlogIcon 붕대소녀 2010.08.29 20: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밑도 끝도 없다는 표현은 너무 좋은 것 같은데요. 그게 제 주체감일텐데 ㅎㅎ.
      뭐냐 <--- 이게 불쾌감의 표현이시라면, 머 미안해요.

      근데 '뭡니까?'라고 했으면 의미도 더 분명하고 저한테 하는 이야기로 들릴텐데 '뭐냐'로 시작하니 독백같군요. 제 블로그에서 하시지 말고 독백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 Favicon of http://boongdae.tistory.com BlogIcon 붕대소녀 2010.08.29 20: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욕설, 명예훼손, 광고등이 아니라면 누구나 쓸 수 있고 아무것도 삭제하지 않을겁니다. 이점은 오해없으시길 ㅎㅎ

    • Favicon of http://highdeth.tistory.com BlogIcon Highdeth 2010.08.30 00: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등가교환이로군요. 밑도 끝도 없다고 생각하시는 글에 정말 밑도 끝도 없는 댓글을 달아주신 것을 보면 말입니다. 아! 이 댓글은 마치 이상의 <권태>를 읽었을 때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듯 합니다. 권태에 권태에 권태를 겪고 자기 자신마저 권태의 나락으로 떨어 뜨리며, 스스로를 해체시킨 이상의 그것을 닮아있습니다. 풍자의 백미라 하면 무엇보다 스스로를 풍자하는 것일진대, 이를 실천하는 것을 보면 살아있는 지성인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습니다. 넷상에서 Ubermensch를 만나게 될 줄이야!!

      연세대와 서울대 토론에서 언금술사를 응원하였습니다. 저는 빨갱이라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논조를 개진한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을 노릇이었지요. 무엇보다 밑도 끝도 없이 가난은 사회의 책임이라며, 논거없이 블랙홀로 빠져서 찐따포스 드리우신 서울대생을 보며 껍데기는 신동엽 시인의 시에만 있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세상은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가늠이 되질 않는 군요.

      밑도 끝도 없는 서울대 이름모를 그분과 이 댓글은 마치 거울을 보듯 닮아 있군요. 밑도 끝도 없다 하면서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던지는 걸, 주장만 하고 논거를 대지 않는 걸 보면 말입니다. 주체의 분열, 포스트 모더니즘은 역사에서도, 현실에서도 현재진행형인 모양입니다.

      성신여대와의 토론에서는 기여입학제를 지지하는 쪽을 택하셨죠? 신자유주의에 반하는 입장을 취하시는 분들께서 기여입학제를 찬성한다는 것에서 연대의 패배를 예감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존재론적으로 두 대상을 따로 볼 필요도 있습니다만, 기여입학제의 골조는 신자유주의의 맥락에 놓여 있는 것이니, 이 역시 주체의 분열을 스스로 조장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만, 이건 반론의 여지를 드리는 게 좋을 듯 합니다.

      무엇보다 저는 화내는 사람은 지는 사람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승하지 못한 화풀이를 이곳에 배설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군요. 내년에는 제발 나오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더이상 대머리 독수리의 비상을 보고 싶지 않군요. 자랑스런 학교 이름에 먹칠하는 것은 이 댓글 하나면 족할 듯 합니다. 당장 가발이라도 하나 사서 쓰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신촌바닥에서 쪽팔린 일이 아닐 수 없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품격을 숨겨주는 가발을 어디서 파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베이에 한 번 문의해보시는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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