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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저녁 디자이너 앙드레김이 돌아가셨다. 퇴근시간 무렵 어수선 하길래 무슨일인가 했더니 그의 사망소식이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나는 패션에는 문외한이라 그의 업적이나 생애에 대해서는 보통사람만큼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내가 고인을 생전에 한 번 만난적이 있다.

2003년 7월, 조폭마누라2 카메오 출연을 위해 방한한 장쯔이의 의상을 앙드레김측에서 협찬해 주기로 했었다. 당시 의상팀장의 아이디어로 기억한다. 장쯔이의 경우 2000년 김성수 감독의 '무사'에 출연할 당시만 해도 그닥 몸값이 비싼 배우는 아니었다. 영화 '집으로 가는길'등을 통해 장이모우의 총애를 받는 배우, 제2의 공리 정도로 알려진 가능성있는 신인이었다. 그런데 불과 몇년사이 그녀는 월드스타의 반열에 올랐고, 평소 셀리브리티와의 교우에 적극적이었던 앙드레김의 이해와 맞아떨어진 사건이었다. 나는 영화사를 위해(?) 일하고 있었던 만큼, 제작사 입장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이벤트를 어떤형태로든 이슈화 시켜야 할 일이었고, 장쯔이 측(그녀의 친오빠이자 매니져인 장쯔난과의 없는 친분을 짜내어)에 앙드레김 선생과 만남과 그것을 보도자료로 활용하자고 제안했고 흔쾌히 받아들였다.

앙드레김의 의상실에서 만난 두 사람은 스탭들이 의상피팅준비를 하는동안 티테이블에 앉아 가벼운 담소를 나누었다.
코미디에서 보여지는 것 처럼 앙드레김의 영어는 그리 수준 낮은 것은 아니다. 유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절하고 정확히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분이다. 오히려 장쯔이의 영어수준 탓에 대화는 천천히 이어졌다. 주 토픽은 장쯔이의 패션취향과 이상형(?)에 관한 이야기였고,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류수영의 사진을 보고 장쯔이가 "리수아이, 리수아이"(정우성이 '무사'에서 맡은 '여솔'이란 캐릭터의 중국어 발음) 하면서 잘 안다고 말하자, 앙드레김이 "그래 류수영, 류수영" 하면서 맞장구 친거 외에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

조폭마누라2 촬영현장
사진출처는 
http://cafe.daum.net/aaastunt/CKHZ/16?docid=1C32M|CKHZ|16|20080128171608&srchid=IIMHcsco200 좌측의 무술지도중인 원진감독님 무술팀 석진님(?) 허락없이 가져왔으나 이해해줄거라 믿어요. 가운데 분은 의상팀 MH님 
그런데, 정작 장쯔이는 앙드레김의 의상이 맘에들지 않았나보다. 주홍빛 투피쓰 바지정장인데 흠... 여튼 우여곡절끝에 입고 출연하게 되기는 했으나. 분위기가 싸~ 해진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장쯔이가 대놓고 싫은 내색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 때 였다. 앙드레김은 거울을 보고있던 장쯔이에게 다가가 손수 가봉해주며 "어때요?"하고 묻는다. 장쯔이는 금새 밝게 웃는다. 의상실의 공기는 어느덧 훈훈해졌다.

그때 내가 본 것이 거장의 관록인지, 월드스타의 예의인지 알 수는 없다. 다만 내가 앙드레김의 부드러운 카리스마에 전율했던 것 만큼은 사실이다.

삶과 죽음 만큼 인간의 본질을 분명히 표현하는 것도 없다.
인간의 유한성만큼은 1등만 기억하는 뭐같은 세상에서도 다소 공평한 원리인듯 하다. 앙드레김의 생년에 대한 논란을 감안해도 그는 75년여를 살았으니, 속된 말로 살만큼 사셨다해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이것도 내가 보는 관점일 뿐,
100살을 산다해도 삶이 지겨울까? 아니 죽음이 반가울까?


HOUSE MD. Season 2, Episode 1.
 "Acceptance"



미드 '하우스'에서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를 설명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인정
의 5단계.

3-4년전쯤 이 에피소드를 볼 때, 나는 Tanatology라는 신학문에 관심이 생겼었다. 죽음에 대한 학문. 죽음에 대한 인식론적 정의와 윤리학적인 접근, 그리고 존재론적 해명이 주된 과제다. 책을 읽는다고 해서 죽음을 피하거나 두려워 하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의 죽음은 한 번 뿐. 우리는 살아있으면서 타인의 죽음을 수없이 맞이한다.

내 죽음을 상상하기보다 내 주변의 누군가의 죽음을 상상할 때가 더 힘들때가 있지 않는가?
그 대처방안은 안되겠지만 책 소개로 오늘 포스팅은 마무리 해야겠다.

오늘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하느라 내일의 삶을 포기할 수 없으니까.




 
책 제목은 교보문고, Amazon으로 링크(새창열기)됩니다.


죽음과 죽어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이진 역/ 이레 2008

정신의학자이자 호스피스운동의 선구자인 저자가 불치병환자 500여명을
상담한 경험과 그 결과를 토대로 쓴 Tanatology의 실제적 입문서.


'하우스'의 에피소드는 이 책에 소개된 이론이 바탕일 것이다.

"30년 이상 죽음을 연구해온 내 연구의 가장 본질적이며 중요한 핵심은
삶의 의미를 밝히는 일에 있었다." 
저자는 2004년 8월 24일 조용하고 편안히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Dancing on the grave : encounter with death
Nigel Barley, Abacus 1997 

'죽음의 얼굴'이라는 제목으로 이미 10년 전에 국내에 번역이 되어 나왔었는데
같은 책인지 생각 못했고, 표지만 보고는 소설인가 했었다.
 

대영박물관 학예사로 일했던 저자가 수년간 아프리카, 동남아등 오지를 찾아다니며
문화인류학, 비교종교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죽음에 관한 저술이다.

죽음 자체의 의미보다 죽음의 제의(장례의식), 식인풍습부터 전쟁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맥락에서의 죽음에 대한 고찰등 언뜻 제목과 목차만으로 보아서는
무척 무겁고 딱딱하지만 실제로는 꽤 가볍고 위트있는 문체로 쓰여져서
쉽게 접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김열규/ 궁리 2001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책이다. 국문학자이자 민속학자인 김열규교수의 저서.
"Memeto Mori" 이 말은 고대 로마시대 개선장군이 시민들의 환영을 받는 가운데,
한 노예가 외쳤다는 말이다. 물론 저자가 이 말을 제목에 단 것과 관련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문장자체의 의미가 와닿는 부분이 분명 있다.

이 책은 우리나라 사례를 소개한다는데 의의가 있을 것임은 분명하나 그것만은 아니다.
죽음에 대한 존재론적 분석과 더불어 의미론적 분석이 이 책의 매력인듯 하다.
저자 스스로도 기획하는중 두려움에 빠질정도였다고 하나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죽음의 유머'에 이르면, 우리의 삶만큼 죽음도 이채롭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집으로 오는 길에 택시를 탓다. 택시기사가 대뜸 앙드레김의 양아들 이야기를 한다. 가족이 별달리 없고 양자가 하나 있는데 그 유산이 천문학적이랜다. 대박!, 인생역전! 이라는 단어를 입에 거품을 물고 해댄다. 듣기 불편해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그러고도 반응없는 나를 향해 한참을 이야기 하는듯 했다. 씁쓸했다.

다시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Posted by 붕대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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