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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눈치 없는 행동을 하면 흔히 개념이 없다, 개념탑재요망... 이런식으로 표현한다.

보통의 경우 생각이 없다라는 말과 치환되어도 무방하다. 넌 생각이 없냐?, 생각 좀 하고 살어...

철학에서는 이런 치환되는 언어들에 대해 경계했다. 애매함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명증적인 언어체계를 구축하는데 힘썻다. 가능한한 정확하게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 보다 분명한 개념정리가 필요했고 그래서 보통의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묘한 단어들이 쏟아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질, 실재, 존재, 존재자, 물자체, 현존, 실체, 속성, 양태, 양상, 사태, 표상 등등 어떤 특정 대상(사건)을 지칭하는 말도 이렇게 많다. 이 단어들이 나온 이유는 애매함을 없애기 위함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양산된 개념들은 보통사람들에겐 모호함만 과중시킬 뿐이다. 이런 말들 몰라도 인생에 하등 문제가 생길것은 없다. 그런데 이 단어들을 개념적으로 구별해 내지 못한다면 개념이 없는 셈이다. 적어도 개념이 부족한 것이다.
 
자 이래도 개념이 없다고 함부로 욕할텐가?

개념 있기는 이렇게 힘들다. 개념이 없다고 누군가에게 말하는 사람조차 어떤 특정한 상황과 준거집단에 한정된 개념을 가지고 있을뿐, 개념이 부족할 것이다. 문제는 개념이란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생각을 말한다는 점이다. 어떤 특정한 상황과 준거집단에 한정된 개념은 개념적으로 개념이 아니다. 뭔 개념없는 소리냐고 물어봐도 어쩔 수 없다. 나는 개념적으로 말하고 있는 중이니까.

예를들어 임원회의실에 불려가 사업부 구조조정에 관련한 주제로 PT를 하고 있다. PT를 하게된 기획안은 회사 인트라넷상에서 사원투표에 의해 1등 먹은 기획안이다. 그런데 회의실에 모인 중역들이 내 아이디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되려 나에게 '이런 기획으로 뭘 해먹겠다는 거냐?', '개념이 없네.', '좀 제대로 생각을 해봐!' 이런식의 반응을 보인다면, 그들이 말하는 개념은 개념이 아니다. 집단관념이다. PT의 내용에는 기존 사업부 몇개의 해체와 통합, 사업본부 해체, 사업팀 단위로 점조직화 하는 내용이 있다. 따라서 기존사업을 축소하거나 재조정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말단 직원들에겐 다소간 불편함이 있을정도에 지나지 않겠지만, 임원들에겐 목줄이 걸린 문제다. 기획안이 맘에 드는 임원은 조용히 미소짓고 방관하고 그렇지 않은 쪽은 핏대를 세우기 마련이다. 개념의 문제가 아니라 주관의 문제이고 관념의 문제이다. 이런식으로 개념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집단관념을 객관적이고 보편적이라고 여기고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는 것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뒤르켐(Durkheim, Emile 1858-1917)은 위에서 정의한 집단관념을 '개인적 의식'(주관)과 구분하여'집합의식'이라고 표현한다. '나로서 나'와 '집단구성원으로서의 나'를 구분한 것이다.
그의 표현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아노미'(Anomie)라는 것은, 결국 이 집합의식의 불균형, 상실로 인한 무질서이다. 집단관념과 개인의 의식의 불일치, 집단관념간의 화해없는 대립, 집단관념의 무차별적 증식등이 아노미를 이끈다. 아노미는 사회현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가치관 혼란도 아노미상태인것이다.


어떤 사회든 집단관념들의 대립이 있고 그 절충이 있는가 하면 양극단도 존재한다. 다양한 집단관념속에서 우리는 내 주관과 어느정도 일치하는 지점을 발견하게된다. 스스로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타인에 의해 규정지어 지기도 한다. 수구 - 보수 - 중도 - 진보 - 급진(꼭 정치적인 이야기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쪽이든 간에 나는 객관적이고 너는 주관적이다라고 말할 권리는 없다.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강압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너는 너고 나는 나일뿐이라고 한다면 아노미에 빠진다.

우리나라에서 보수와 진보의 싸움을 보면 진지한 논의도 많이 있는 한 편, 물고 뜯는 개싸움도 많다. 그나마 대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에는 만족한다. 엇그제 홍준표의원의 한겨레 인터뷰 기사를 보고 놀랐다. 기사의 헤드는 그닥 맘에 들지 않았지만 뭐 어짜피 직설대담이니까 이해해야지. 내용은 꽤 재미있었다.
진보의 철학과 보수의 철학에는 영원한 평행선이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접점도 분명 존재한다는 생각이 든다. 홍준표의원이 한국의 보수를 대표하고 한겨레가 한국의 진보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자신이 속한 진영으로 부터 까임의 최전방에 서있는 상태 아닌가. 

나는 솔직히 그들이 까임을 두려워하지 않아서 좋다.


보통의 사람에게도 좌우,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서 변화는 다소간 불편하다. 이사를 하고, 대학생이 사회인이되고, 좌측통행이 우측통행이되고, 좌회전후 직진이 직진후 좌회전이 되는 상황이 그닥 반갑기만 한 것이 아니다. 하물며 기득권에서 변화를 반가워할리 없다. 그리고 변화라는 녀석은 아직 기회를 잡지 못한자들에게도 선택적으로 지지받는다. 진보, 보수 라는 단어에 현혹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변화자체는 양 진영 다 원한다. 수구가 아닌이상 그렇다. 그리고 보수와 진보, 급진과 온건의 개념을 맘대로 결합시켜 이해하다간 오해만 커진다.



천안함 사건을 정부가 약간 이용한듯 하다는 홍준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면, 그의 또 다른 말인 야당은 왜 북한연계를 인정하지 않는가? 도 새겨서 들어보자. 서해성의 촛불집회 아동학대죄 논평과 윽박지름(편안한 분위기 였을거라고 추정되지만)에 주목했다면 한홍구의 인촌의 농지개혁수용에 대한 평가에도 귀기울여보자.

다시 처음부터 줄곧 해왔던 이야기로 돌아가자.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개념이 없어도 된다. 욕먹을 일도 아니다. 다만 주관이 없으면 바보가 될것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주관을 갖고 표현하지 않아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내 주관이 절대적이라는 생각만 버리자 제발.

Posted by 붕대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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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organicfarmer.tistory.com BlogIcon 꿈이촌놈 2010.08.14 16: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지인들에게 제가 늘 하는 말이 있어요. "남이 나와 생각이 다른 것은 틀린것이 아니다."라고...
    특히 정치권에서 나와 생각이 다르면 틀리다라는 말들이 많죠.
    서로의 생각을 존중한다면 더욱 좋은 사회가 될텐데 말입니다.
    붕대소녀님의 생각을 깔끔하게 잘 쓰셨네요. 한 수 배우고 갑니다 ^^

    • Favicon of https://boongdae.tistory.com BlogIcon 붕대소녀 2010.08.15 02: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과찬의 말씀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만... ^__^ 헤벌쭉
      감사합니다. 저는 늘 괴짜님께 배우는 입장이라 생각해서 선생님께 칭찬받은 학생의 기분입니다. ^^